사랑의 봉사인 세족례 - 장효강 신부님 /2007.04.05

2007. 4. 7. 오후 6:16:54

글자

복  음 : 요한 13, 1-15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삼일의 첫 날인 주님의 만찬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 복음에서는 다른 복음과는 달리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발을 씻어주는 이야기(세족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 복음사가에게 있어서 이 세족례의 예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또 풍부한 신학적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몸소 씻어주는 일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시려 하실 때 베드로가 나서며 "스승님! 당신이 저희 발을 씻기다니요? 안됩니다."하며 간곡히 만류합니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아직까지 예수님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그분을 세속적인 힘과 우월적인 일을 행하는 분이길 고대할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아채시고 그들을 향하여 일침을 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된다". "너희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모드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너희도 가서 세상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어라". 즉 예수님은 발을 씻어주는 예식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사업의 참된 표양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세족례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발 중에는 아주 곱고 예쁜 발도 있지만 대부분의 발은 그렇지 못합니다. 온종일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다보니 몸의 어느 부분보다도 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래서 씻는 횟수로만 따지면 결코 뒤지지 않는 발이지만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천대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 까닭에 타인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에 대한 해석도 아주 다릅니다. 2천년전의 이스라엘에서의 상황은 우리 생활에서 겪는 발의 수난보다 더 합니다. 신을 신지 않은 발들이 대부분일뿐더러 설사 신었다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묶은 구멍이 뻥뻥 뚫린 신을 신고 양말도 없이 건조한 기후로 인해 먼지가 아주 많이 나는 길을 돌아다니던 발들이라 그야말로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에게 발을 씻어주는 일은 아주 극진한 대접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주 부유한 가정의 노예들이 주로 맡았습니다. 당연히 노예가 아닌 사람들은 발씻어주는 일을 아주 치욕적인 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발을 씻어 주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나의 자존심을 기쁘게 낯출 수 있어야만 허리를 숙일 수 있으며 발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치욕스러운 일을 그것도 다른 자리가 아닌 제자들과의 마지막 이별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아주 엄숙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해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해도 결코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 복음사가는 성체성사의 근본 정신은 더러운 발까지도 기꺼이 씻어 줄 수 있는 '조건 없는 봉사'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만일 발을 씻어주는 사랑의 봉사가 없다면 성체성사는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 홀로 만의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공동체 내에서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발 씻어주는 사랑의 봉사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많은 형제 자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보다도 더 꺼림 찍한 죽은 이들의 몸을 돌보는 일에 언제고 기꺼이 달려가시는 연도회 회원들,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냉담자들과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 봉사하는 레지오 단원들과 사회 복지 부원들, 학교와 직장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매주일을 온통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은 주일학교 교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도 치우기에는 소원한 만남의 방이나 본당의 구석구석을 치우는 할머니들. 작은 일에서부터 구역 내 신자들을 위해서 발에 땀띠가 날 정도로 뛰어다니는 반장님들. 또한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통해 하느님의 사업에 헌신하는 사목회 형제 자매들. 이런 분들이야말로 성체성사에 보다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을 본받으려 기쁘게 희생과 봉사를 봉헌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몇몇 분들의 보람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기쁘게 성체성사에 참례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 공동체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도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더러운 발들이 여전히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하곤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해도 모든 사람들의 발을 다 씻어주지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 일은 정말 짜증나고, 귀찮고, 힘들고 때로는 돈도 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시간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봉사를 통해 우리는 신앙을 겉에만 도배함이 아니라 신앙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녕 중요한 것은 스승이신 제자들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우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오늘 우리에게 내어주셨다는 것과 우리는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세상의 주인이시면서도 세상을 힘으로가 아니라 사랑의 섬김으로 세상의 죄악과 맞서 싸우신 스승을 본받읍시다. 세상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우리의 허리가 낮아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기쁘게 예수님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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