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1년 중 가장 거룩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잘 묵상하는 축복된 때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성주간 수요일은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벗어나는 역사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자유와 해방의 몸짓이며 축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진정한 파스카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에게 몸소 다가왔던 하느님을 거부할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모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계시며 그 수난의 길을 가야 하는 도중에 오늘은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이라는 쓰라린 고통까지 겪고 계십니다. 골고타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까지 당신이 겪어야 하는 마음의 변화와 고통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으면 합니다.
사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배신은 오늘 이 사건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 일생을 통하여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그분이 진리를 말하고 기적을 행할 때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기보다 오히려 수군거렸습니다. 수군거린다는 것은 부정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은 불안한 사람들의 행동이며 무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수군거림은 언제든지 예수님을 반격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었고 불신을 깔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의심과 불신 그리고 배신으로 이어질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세상에 드러나기 어려우며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알아보지 못할 때 그것은 곧 진리에 대한 배신으로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지켜야 할 상식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될 것이고, 심오한 정신세계를 추구하기를 포기하였다면 이웃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고, 사랑과 정의의 삶을 살기를 포기하였다면 죄악에 굴복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배신입니다. 내 중심적인 삶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주 무엇엔가 누구엔가 배신을 행하게 됩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으며,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나그네를 모른척하게 되고, 그릇된 길로 조금씩 비껴가고 있습니다. 그런 삶은 결국 예수님을 외면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나약함으로 유다처럼 우리는 자주 진리의 길을 외면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듣지 않고 수군거리면서 내 삶에 그분을 맞추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 뜻에서 우리는 동시에 항상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수군거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의 기로에 우리는 항상 서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늘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길을 알아듣고 선택함으로써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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