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성목요일 2007년 4월 5일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2007. 4. 5. 오전 8:16:53

글자

주님 만찬 성목요일    2007년 4월 5일


요한 13,1-15.   1고린 11,23-26.  


오늘은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것은 제자들과 이별하는 식사였지만, 또한 당신이 살아 계시는 동안 하신 바를 빵과 포도주 안에 요약하여 제자들에게 남기시는 기회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그 식사의 핵심을 이루는 말씀과 행위를 소개합니다. 예수께서는 빵과 잔을 각각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는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쏟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당신이 가르치고 실천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성찬입니다. 우리는 성찬으로 주님의 죽음이 지닌 의미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실천으로 그것을 전합니다. 주님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또 우리의 어떤 실천 안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실천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죽음을 무릅쓴 예수님의 삶입니다. 신앙인은 성찬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회상합니다.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르치신 하느님의 일이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있을 것을 염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처럼 처신합니다. 나 한 사람이 잘 되어야 하고 또 내 가족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물질에 눈이 어두워 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도 못하고, 들어야 할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베푸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생각하며 삽니다. 하느님이 베푸신 이웃도 외면하지 않고 돌보아주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압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사람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완전할 것을 지향하지도 않으며,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어떤 베푸심에서 비롯된 자기 생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약삭빠르게, 또 편하게 살려 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도 찾아내어 기뻐하는 목자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의 마음을 배워 실천하는 신앙인입니다.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좌절과 실패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를 부르면서 그분의 뜻을 소중히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넘어서도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이 유언으로 남기신 것은 내어주고 쏟으신 당신의 삶이 우리 실천 안에 나타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몸이라는 빵을 먹고 당신의 피라는 잔을 마시면서 내어주고 쏟으신 당신의 삶이 우리 실천의 원리로 살아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서는 최후만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만찬 식탁에 앉으셨다는 것만 말하고 즉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야기로 건너갑니다. 이 복음서는 식탁에서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신 말씀들을 생략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은 이야기를 모릅니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원 후 100 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먼저 기록된 세 개의 복음서들은 그리스도 공동체들 안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성찬은 모든 공동체들이 이미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신 말씀을 새삼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만찬으로 시작된 성찬이 지닌 의미를 알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성찬이 먹고 마시는 허례허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식탁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십니다.’ 식탁이 있는 식당은 음식을 먹는 장소이지 발을 씻을 곳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예수님이 최후만찬 자리에서 발을 씻으셨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성찬은 우리를 이렇게 겸손한 섬김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고 말하면서 왕강하게 사양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받지 못한다.’ 이 씻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발 씻음이 의미하는 종과 같은 섬김을 우리가 실천할 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께 기도하여 축복을 받아서 잘 사는 길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대하게 해 주지도 않고, 성공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성찬에 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하느님의 일, 곧 섬김을 실천합니다. 하느님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생명을 베풀고 살리십니다. 요한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자 “저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30)고 고백하였다고 전합니다. 그것은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가 실천으로 고백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죽기까지 예수님이 실천하신 섬김은 우리 안에 커져야 하고, 우리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는 우리의 망상은 작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베푸셔서 허무의 심연 위에 잠시 떠있는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은 숨어 계십니다.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신 나머지 숨어 계십니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섬김들 안에 하느님은 숨어 계십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그분은 커져야 하고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작아져야 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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