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2007-04-03 복 움 요한 13,21-33. 36-38
강 론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전해진 이후 극심한 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죽음을 당한 순교의 역사를 주제로 해서 쓴 책입니다.
권력을 쥔 박해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니까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다음과 같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다 십자가를 세워 놓고 거기에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푹 잠겨서 꼼짝없이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라도 그리스도를 배반하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답니다.
두 사람의 교우가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느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어찌하여 침묵하고 계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느님은 잠자코 계시느냐고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느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의 고난을 지켜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통가운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느님의 인내’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처럼, 또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장담하는 시몬 베드로처럼,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주님의 사랑을 배반으로 응답하는 제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순교자의 모습 보다는 배반자의 모습을 더 많이 보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베풀어주십니다.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계십니다.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나 당신을 배반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그렇게도 생각해 주십니다.
고통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배반으로 되갚지 않기를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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