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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사도였고, 예수님의 가까운 친구였으며, 둘 다 예수님이 그들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분을 배신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충성심 혹은 충실함을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는 베드로의 장담은 그가 그 밤에 예수님을 어떻게 배신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위대한 성인 중의 하나로써 오늘도 존경받고 있지만, 반면 유다라는 이름은 2000년이 넘도록 저주받을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뭐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요? 복음에 따르면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계획을 미리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악한 계획으로부터 돌아설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든 일을 파국으로 몰고 갔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유다가 했던 행동들 안에 담긴 그의 “냉정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라며 장담하는 것 역시 그 순간만큼은 진정한 마음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단지 인간적으로 약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충동적이었습니다. 때때로 베드로는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말함으로써 문제를 일으켜 혼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죄와 잘못들이 함께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치명적인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유다의 잘못은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획된 것이었고, 그것은 온전한 의식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베드로의 잘못은 “용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닌 인간적 약점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 출발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약함을 발견했을 때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거기에 많은 약점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감정에 못 이겨 약점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약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미워할 때 그 미움이 치명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것과 누군가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못할 때 그것이 종내는 치명적인 것이 될 것임을 압니다. 분명 모든 죄와 잘못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먼저 아파하셨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느님께서 우리가 용서를 청할 때마다 매번 우리를 용서해 줄 것이라는 것 또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늘상 필요한 것은 “알아채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와 잘못들을 그것이 유다의 죄만큼 큰 것이 되지 않도록 (의식)성찰을 통해 자신의 약점들을 돌아보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베드로처럼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분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3번이나 넘어지셨음을 묵상합니다. 올해 사순과 성주간 때는 그분이 3번 넘어지셨다는 것보다 그분이 3번 일어나셨다는 것이 더 깊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셨던 것처럼, 그리고 베드로가 돌아왔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일어나고 베드로와 함께 주님께 돌아가는 성주간을 준비합시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을 향한 맘 변함없습니다. 제가 일어날 힘이 없다면 당신께서 일으켜주소서. 아멘.” * 『Sabbath』2005.03.22 Fr. Rudy의 글 참조 인용. |
[묵상] 유다와 베드로 ㅣ 이회진 신부님 /2007.04.03
2007. 4. 3. 오후 11: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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