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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이
바로 당신을 닮아 따르는 것이라 가르치셨으며, 첫째가 되는 것은 남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들에게는 “누가 첫째 자리에 오를 것인가?”라는 문제는 중요했습니다. 첫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이고, 예나 지금이나 책임자는 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과 함께 통솔의 권한도 갖게 됩니다.
물론 그때 책임자가 갖는 통솔에 관한 권한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라는 권한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그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흔히 책임자가 되는 것을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 또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도 역시 그런 힘과 권한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권한을 갖고 멋지게 그리고 훌륭하게 제자단을 이끌고 싶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런 힘과 권한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공동체와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겸손함이 배제된 권한과 힘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커다란 위협을 가합니다. 그 위협의 가장 큰 유혹이 오늘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치우는 것”, 다시 말해 예수를 자기 마음에 따라 살아보고자 하는 유혹일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보이신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이면 충분히 세상을 이길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과 사람을 지배하는 힘을 찾기보다 섬기는 사랑을 찾았습니다.
유다에게 있어 예수님은 자신이 기대하던 의로운 유다인으로 살아갈 힘을 줄 것이라 기대했건만 예수님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보기에 예수님의 삶도 그분을 죽이려는 현실 상황도 이제 곧 끝날 것 같았습니다. 유다는 그런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였고, 그래서 이제는 자기 자신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겸손과 온유와 사랑에 대한 자기 체험이 부족하였기에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믿는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나 다른 이의 삶의 방식이나 생각은 자신의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돕는다는 구실 아래 자신의 영적 성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십시오.”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의 삶을 간여한다는 것은 곧 상대를 죽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유다가 그렇게 예수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였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사셨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권고하는 것처럼 먼저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 먼저 말없이 바라보게 하시고, 말없이 사랑하게 하시고, 말없이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강론] 내가 여러분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l 이회진 신부님 2007.04.04
2007. 4. 5. 오전 8: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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