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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수요일
우리가 십자고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원하셔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마치 적들의 세력에 압도되어 강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언젠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분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을 때, 그분은 쉽게 그들 손에서 빠져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향 사람들이 그분을 절벽으로 끌고 가서 벼랑 아래 바위에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그분은 간단하게 몸을 돌려 자리를 뜨셨는데, 그래도 어느 사람 하나 그분에게 손을 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적들이 그분을 붙잡아다 죽이려던 사건들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 번도 그들의 뜻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설명해 주셨듯이 당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분의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두고 계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는 당신이 희생제물로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아버지께서 정해 두신 그 때를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나의 때가 가까웠다”는 말씀으로 시사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또한 열 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배반하리라고 예언하심으로써 당신의 죽음에 대한 사전지식을 피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때를 아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 아버지께 사랑으로 순종하고 성서의 말씀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 죽음을 흔연히 받아들이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당신을 착한 목자로 제시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을 맺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7이하). 그리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이상의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동기로 그 무서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가를 우리들에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며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게만 보이고 고통과 치욕의 십자가이지만, 우리들은 바로 그곳에서 사랑의 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그레고리가 쓴 예수님과 함께 한 저녁식사란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죄많은 우리를 다시 하느님에게 돌려보내려면 뭐가 필요한 거죠?” “하느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죠. 사람들이 스스로 죄과를 치르게 할 수도 있었고….” “그 결과는….” “인간과 하느님의 영원한 단절이죠.” “바람직한 건 아니군요. 다른 선택은 뭐였나요?” “하느님이 직접 그 벌을 받는 거였습니다.” “어떻게요?” “하느님은 창조주입니다. 창조주는 피조물보다 위대하니까요. 창조주가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대신해서 직접 죽음이라는 벌을 받으면 완전한 정의를 만족시키죠.” “신이 뭐하러 그러겠소?” 그는 물컵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하나 물어볼게요. 사라가 열일곱 살인데, 질 나쁜 무리들과 잘못 어울려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봐요.” “그건 좀 심하지 않소?” “그냥 가정입니다. 자,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사라는 누군가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딸 대신 그 벌을 받으실 건가요?”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당연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네, 대신 받을 겁니다.” “왜죠?” “왜냐하면 난 그 애를 사랑하고, 그 아이에겐 남은 인생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 딸에게 괜찮은 인생을 살 기회를 주고 싶으니까요.”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자기 접시를 앞으로 밀고는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당신이 딸을 사랑하는 만큼 하느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느님은 참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계시며 그 사랑 이 번 주간에 절정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에서는 이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들에게 내어주시며 그 사랑을 당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신 내일부터는 성삼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내일부터 거행되는 성삼일의 전례에 함께 참여하며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또 우리들도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도록 합시다. |
성주간 수요일/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민병섭 신부님
2007. 4. 7. 오후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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