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오늘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당신 생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들은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가 전하는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님이 처형당하여 돌아가시자, 실망한 제자들은 각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어느 시기가 지나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모여듭니다. 그들은 모여서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그들에게 분부하신 대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분에 대해 회상합니다. 그들은 그 식사 중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의 잔’ 이라는 말씀을 반복하면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과 더불어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회고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복음서들 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남겼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내다보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빕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계속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보아도 베푸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생각하고, ‘우리에게 잘못 한 이를’ 보아도 우리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베푸신 하느님, 용서하신 하느님이 아버지이시면, 우리의 처신이 보입니다.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러 왔다.”(6,38).
예수님은 유대교 문화권에서 돌출 행위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유대교 실세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는 않고, 무겁고 힘겨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에게 지우고 그것을 나르는 데 손가락 하나 대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셨습니다. 잔치에서는 윗자리,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탐한다고도 비난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생각에 열중하고 심취하셨습니다. 당신 한 몸 대우받고 존경받는 일이 그분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유대교 기득권층은 율법과 제물 봉헌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 명예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떼 같이”(마르 6,34) 짓눌려 산다고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면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믿으셨습니다.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섬기는 사람으로 자처하셨고, 사랑하셨고, 죄인에게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을 먹고 예수님의 피라는 포도주를 마셔서 예수님의 삶이 우리 안에 실천되게 하는 성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식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이 최후만찬 이야기를 하는 그 자리에 이 이야기를 갖다 놓았습니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성찬은 교회 안에 이미 널리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만찬에서 있었던 일을 새삼 길게 보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찬이 먹고 마시는 허례허식이 되지 않도록 성찬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발 씻은 이야기를 보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생애를 통하여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생명을 실천하는 일이었고, 예수님은 최후만찬에서 그 생명이 하는 일을 요약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성찬은 그 생명이 하는 일에 우리를 참여시킵니다. 섬김을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이었고, 섬김을 위해 쏟으신 예수님의 피였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을 먹고 예수님의 피라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그분과 같은 생명을 살기로 약속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발을 씻는 종과 같이 섬김을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일이었습니다. 발을 씻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사랑은 명예롭게 군림하는 데에 있지 않고, 스스로 비천한 자가 되어 섬기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높고 강하고 군림하기를 즐겨하는 우리들입니다. 인간이 상상하는 하느님도 지극히 높으시고, 엄하게 심판하시는 강자입니다. 하느님은 군림하지도 지배하지도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 안에 하느님의 연민과 사랑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말은 연민과 사랑을 벗어나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강자는 상대를 억누르고 부셔버립니다. 강자는 사람을 성장하게 하지도 않고 감동시키지도 않습니다.
성찬은 초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남을 지배하는 힘도 남을 압도하는 영광도 주지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힘을 우리 안에 자라게 합니다.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과 섬김은 비록 보잘것없어도, 예수님이 하신 섬김과 사랑을 역사 안에 연장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우리의 역사 현장에 살아 계시고 일하시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최후만찬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이별의 식사였지만, 우리의 연민과 사랑과 섬김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약속하는 식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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