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주간 수요일
2007. 4. 4.
토평동.
이사 50, 4-9ㄱ.
마태 26, 14-25.
예수께서 행복하셨을까요?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예, 그럴만도 하죠. 그러나 행복했을 예수님의 삶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모함 속에서 당신의 진실을 알아주는 이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당신을 시험하고 죽이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제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는 움직임에 제자까지 나서서 그분을 배반합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행복하셨을까요? 이렇게 알아보고 다시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어찌 답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그분은 행복하셨겠죠.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행복의 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는 이는 많고, 그 정의도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 조르주 상드는 “삶의 행복은 오직 한 가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만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예수께서는 분명 행복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셨고, 또 인간의 사랑을 받으셨지만, 그러나 그분의 행복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했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그분의 믿음은 사랑하는 제자(유다 역시 사랑하는 제자였다)의 배반에도 흔들림이 없이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유다가 그분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었다면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은 하지 않았을텐데, 함께 살면서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내가 그분을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 26, 15)
그들은 돈을 주었는데, 유다는 과연 무엇을 바란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고, 그들이 던져준 것처럼 돈을 요구했을까요? 이쯤 생각해보니 복음은 나에게 다가옵니다. 나는 그분을 두고 흥정한 적은 없는지….
제인 오스틴이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믿을 만한 행복의 보증수표는 많은 수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돈을 바라보며 그 돈을 위해 예수께 내어드려야 할 시간, 마음을 흥정한 것은 아닌지…. 내 명예, 욕심과 혹은 게으름과 그분을 바꾸는 삶을 산 것은 아닌지….
솔직히 나를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여전히 나쁜 마음이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 25)라고 묻는 유다는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잘못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간다면 그분께서는 기꺼이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내일부터 3일간의 성삼일 예절, 그 안에서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행복을 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