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어머니 마리아 - 조성호 신부님

2007. 1. 2. 오후 1:41:55

글자

다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06. 1. 1.

토평동.

민수 6, 22-27.

갈라 4, 4-7.

루카 2, 16-21.

성탄 팔일 축제의 끝입니다. 그 끝자리에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면서 예수 성탄을 기리는 것이란 마리아의 삶을 좇는 것임을 배웁니다.

어머니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보면, 그 어머니의 자리가 크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자리라면 얼마나 힘겨운 자리였을까요? 물론 그 축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엄청난 자리에 못지않은 삶이 요구되는 자리. 만약 의식을 하며 살았다면 그 중압감에 쓰러지셨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제대회 봉사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저의 어머니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중에 한 분이 ‘저는 신부님의 어머니는 못할 거 같아요.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 살지 못하거든요.’하고 말합니다. 물론 그분도 신앙의 삶을 잘 살고 계신 분이셨지만, 겸손하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의 어머니니까 그리 살아야지, 하고 사셨다면 힘겨운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어머니를 보면 그런 자리여서 그리 사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신앙의 삶을 살다보니 그에 따른 겸손함이 배어난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분께서도 그런 인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본시 신앙인으로서 신실한 삶을 보시고 주님께서 뽑으셨듯이 그 삶 그대로 겸손의 삶을 사셨을 것이고, 누가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되다’라고 하든지, ‘여인 중에 복되십니다’ 라고 하든지, ‘미쳤다’라고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당신의 삶을 지키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성탄의 마지막 자리에서,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면서 그런 삶을 청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성모 마리아의 손을 잡고 출발하면서 나도 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신앙이 아닌 굳건하고 신실한 신앙의 삶을 살며, 누가 부추겨도 명예를 세우지 말며, 누가 나를 깎아내려도 실망하거나 대응치 않는 삶을 살게 되길, 세상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민감하며,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묵상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기를 청해봅니다.

다음은 류시화가 엮은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나오는 작자미상의 ‘신과의 인터뷰’라는 글입니다.

어느 날 나는 신과 인터뷰하는 꿈을 꾸었다.

신이 말했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구?’

내가 말했다.

‘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의 시간은 영원,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무슨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신이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내가 겸허하게 말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 밖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모든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꿰뚫는 씁쓸한 글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내 삶을 추스르게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남들은 그렇더라도 나는 그러지 않을거야 라며, 축복은 다 내 것이고, 불행은 다 남에게만 일어나는 것처럼 살아온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사라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아등바등대지만, 결국 돌아보면 무의미하게 살았다는 회한과 반성만이 남는 한 해의 끝자락.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목자들은 그 아기에 관하여 들려준 대로 말하고,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 이름을 예수라 짓습니다. 모두가 신앙의 삶 안에서 전해 받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저도 주님의 뜻을 찾으며, 주님께서 일러주신 삶을 살아가는 삶이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저 주님의 종이라 칭하며, 모든 일을 종처럼 순명하고 사신 어머니 마리아처럼 아래로 아래로 향한 삶을 살게 되길 청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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