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간혹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화 영화에 나오는 ‘우주 소년 아톰’을 흉내 내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하늘로 날겠다며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정도는 심하지 않을지라도
때때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동일시하며 그와 닮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성형 수술이 보편화된 시대적 경향으로 인해 더 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많은 이들이 비슷비슷한 모습의 얼굴 모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연예인의 누구와 닮은 사람들
혹은 미인, 미남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아마 나중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간다면 하느님도 우리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누구세요?”라고 말입니다.
당신이 주신 얼굴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왔다면 말입니다.
외적인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면 마음이 점점 높아져
자신이 선택된 사람, 혹은 지배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내가 주님 안에 살고, 주님이 내 안에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된 이들로서 주님과 함께 할 때
더 평화롭고, 더 은총으로 충만하며,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압니다.
이렇게 주님과 일치할 때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더욱 더 그리스도와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해 그 길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 부유함, 유명해짐에 따라
교만의 유혹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성공하고 싶어 하고, 부유해지고 싶어 하며 유명해지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더 이상 충만함도, 은총 가득함도, 평화로움이나 기쁨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더 많은 갈구와 갈등과 배고픔과 부족함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주는 기쁨 대신에 다른 것,
즉 성공이나 부유함 혹은 유명해지고 싶은 것에 노예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성공과 지위와 명예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 혹은 별개의 존재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많은 기적과 권위 있는 말씀을 선포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세례자 요한에게도
같은 유혹의 손길이 뻗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은 누구요?‘ 하는 소리에
그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즉, 요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 역시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되이 자신의 분명한 모습을 하느님께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 저는 감히 당신을 쳐다볼 수조차 없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으로 인해 희망의 안고 살며, 당신과 함께 사는 것에 행복해 하는 가난한 영혼을 지닌 당신의 제자입니다. 아멘.”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 이회진 신부님 /: 2007.01.02
2007. 1. 2. 오후 1: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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