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2007.1.2.화
| 요한 복음 1장 19-28절 | ||
|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 ||
| 너를 비워서 그분이 너를 차지하게 하라 이중섭 신부 | ||
| 세례자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람들의 오해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요한은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보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데서 세례자 요한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덜 중요한 역할, 그늘에 가린 자리를 사랑하는 태도를 우리는 요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잘나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 많은 본당에는 세례자 요한 같은 사람이 많이 있어야 본당 꼴이 제대로 잡힐 것입니다. 소리는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가 냅니다. 글씨는 붓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씁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꽃이 영원히 꽃으로 남기를 고집하면 열매는 영영 열리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르친 진리는 ‘너를 비워서 그분이 너를 차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 ||
| 지구는 나의 집 | ||
| 어떤 노숙자가 이런 문구가 쓰인 손 팻말을 들고 길 모퉁이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역에서 삽니다. 이 거리는 나의 집이고, 나는 이 집을 매우 사랑합니다. 문은 항상 열렸으니까 언제든지 오십시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지구촌’이라는 결속감과 환경보호 의식을 구체화하려면 세상 곳곳에서 ‘지구는 나의 집’이라는 말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으니 지구는 그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 확실하게 그분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단지 하느님께서 지구를 집 관리하듯이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세상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살게 하셨지요. … 다윗은 자신은 궁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휘장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이 송구스러워서 하느님께서 거하실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알기는 하겠는데 그가 좀 어리석고 단순해보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느님의 것이니 본디 다윗은 하느님의 땅에 사는 손님인데, 지금은 그가 하느님께서 거하실 곳을 세우려고 하니 주객이 전도되는 격이지요. 삶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지상에 오래 살다 보니 자신이 그 땅에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지요. 진정한 주인을 잊어버리고요. 고하풍 | 분도출판사 | <하느님, 참 묘하셔라>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