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토요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이기양 신부님

2006. 12. 16. 오후 6:49:12

글자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제 1독서 : 집회 48,1-4.9-11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복    음 : 마태 17,10-13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랑하면 보인다.’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바로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것이 사랑을 하면 보이기 시작하지요.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은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공감가는 말입니다.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만큼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을 지나가도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또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지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나 사랑이 없으면 수없이 스쳐 지나가고 자주 부딪혀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있어도 안 보이지요.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신앙에서도 똑같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옆에 계신 주님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유다인들은 그토록 고대했던 메시아,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바로 옆에 그 분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관심과 바람이 달랐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찾아다녔지요. 도대체 유다인들은 관심이 어디에 있었기에 그렇게 수천 년 동안 고대하고 기다려온 메시아가 왔음에도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제시하셨는데 이 나라는 더 이상 한 특정한 백성하고만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 만백성에게 열려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를 쳐부수고 자기들을 세계의 일등 국민으로 만들어 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를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메시아는 유다 민족만을 위한 메시아였던 것이지요. 그런 메시아를 고대하였던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던 열두 제자들 역시 이러한 유다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루카 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며 공동체 안에서의 권위는 세상의 것과는 달리 당신의 표양을 따라 섬기는 것을 뜻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지만 바로 이어지는 24절 이하에서 제자들은 누구를 제일 높게 볼 것이냐는 문제로 옥신각신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옆에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관심은 유다인들과 다름없이 세상적인 것에만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이 치유를 받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악령들이 쫓겨나고,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등 수없이 많은 메시아의 증표를 드러내시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제자들에게 내리십니다. 마귀를 쫓아내시며 세 번이나 함구령을 내리셨고, 병자와 죽은 이를 고쳐주시면서 네 번,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두 번 주의를 주심으로써 무려 아홉 번에 걸쳐서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거듭 분부하시’(마르 5,43)는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들이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십자가상의 죽음 후에 일어난 부활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되 메시아임을 알게 됩니다. 즉, 승리하는 왕으로 와서 유다 국가를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스라엘에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옛 영화를 되찾게 해주는 메시아가 아니라 섬김과 나눔으로 평화와 정의의 나라를 건설하는 메시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을 통하여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그 사건을 목격하고 막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마태17,10)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갖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건은 보지 못하고 율법 학자들의 말에 더 솔깃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심이 다른데 있었기 때문이지요.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마태17,11-12)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으로 벌써 왔으며, 당신이 바로 메시아임을 드러내시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알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해도 나의 관심과 바람이 엉뚱한 곳에 가 있다면 결코 예수님을 알아볼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수없이 성당에 다니고 밤낮 없이 기도를 해도 만날 수가 없지요. 나는 지금 어떤 하느님을 고대하며 믿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나와 내 가족만이 잘 되기를 바라며 내 소원을 하나하나 들어주는 그런 하느님을 고대하고 기대한다면 앞에서 말한 유다인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성탄절이 수천 번 찾아와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고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답은 마태오 복음 25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25,34.36)
   그 때 의인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마태25,37-39)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가난한 이웃들 속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나의 소중한 것들을 그들과 기꺼이 나눌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제자들은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관심이 달랐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 만나기를 원하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이웃과 나의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관심과 사랑이 이웃 안에 머물 때 바로 그 안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고,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나 뵐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나를 나누는 작은 실천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넘치는 생명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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