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성경의 장면들이 하나씩 무대 위에 올려지지요. 거기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있고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백인대장의 종도 살리시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지요. 아! 나이 든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젊은 성모님도 계시네요.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또 감옥에 갇혀있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도 보입니다. 신약의 장면들뿐이겠습니까. 우리가 1년 내내 들었던 독서와 복음 장면들이 무대 위에 올려지고 그 장면들은 마치 회전목마처럼 반복됩니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우리도 낯익은 장면들에 또 다시 흥분하고 설레고 탄식하지요. 당신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반복되는 똑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때로는 읊조리며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 같기도 하고 먼 나라의 전설 같기도 한 노래이면서 이야기인 성경의 말씀들 속에서 우리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신다는 말씀처럼 들리고 “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아가서의 연가는 내게 쓰신 연서로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우리를 애타게 사랑하시는 임이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등잔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아니, 오피르의 금으로 단장한 왕후처럼 주님을 맞아야 하겠지요.
기다리는 대상이 있고 기다리는 시간도 이제 손에 잡힐 듯합니다. 행복하다는 말은 굳이 더할 필요가 없겠군요. 여러분도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기다림의 시기가 절정에 다다른 듯한 오늘 독서와 복음은 모두 어떤 ‘때’를 암시합니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스바 3,16) 사도 바오로는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하고 권고합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자 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루카 3,16) 주님을 예고하면서 그분께서 오실 때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오늘 말씀들은 환희와 기쁨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사제도 오늘 화려한 색상의 장미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절제와 속죄, 기도와 자선을 하는 것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기쁘게 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울러 대림절 동안 계속 이어지는 긴 속죄 행위의 중간 휴식처럼 잠시 쉬면서 머지않아 아주 구체적으로 성취될 그 기다림을 기억하면서 기뻐하라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님의 이 ‘때’를 준비하는 자세를 오늘 복음은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10) 하는 군중의 질문에 우선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라고 세례자 요한은 대답합니다. 세리들의 질문에는 직업윤리를 지켜 당연한 정의를 실천하고 군사들의 질문에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라”고 대답합니다. 이제 우리 역시 요한을 찾아가서 개별적으로 세례자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기락 타대오 신부·가톨릭교리신학원장 |
[강론]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가락신부님]-대림3주일
2006. 12. 16. 오후 6: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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