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 마태오 17,10-13 ▒ 12월 13일 복음말씀에서 ◈
한국 가톨릭문화원 카페 특별회원 원요아킴님의 사진입니다.
┗▶『해설과 묵상』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지난 목요일의 복음이다. (마태 11,11-15)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모든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하셨고, 말라기 예언자가 특정한 때에 올 것으로 예언한 "특사"와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임을 증언하셨다. 말라기 예언자는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 3,1), 그리고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말라 3,23)고 하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기 직전에 그 길을 닦을 야훼의 특사가 먼저 올 것이며, 세상 종말에 야훼의 심판이 있기 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던(2열왕 2,11) 엘리야가 다시 와서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을 도모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야훼의 종말심판은 메시아에 의한 새로운 세상의 개벽(開闢)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이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이신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계시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에 대한 단순한 불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의 정체성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사명, 즉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도모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참수된 까닭에 "재림한 엘리야"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메시아의 도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의심은 예수님의 증언에 의해 차차 풀려가지만, 정작 해답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 속에 들어 있다. 사람의 아들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대접을 받아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 차례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예고를 통하여 제자들은 차츰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깨달아 간다. 이제 선구자와 메시아에 대한 제자들의 수용과 믿음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배척과 불신의 대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된 은총은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을 이제 예수님 성탄의 구유에서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상대 신부』

▒┃당신과 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상지종 신부┃▒
주님과 당신 사이에 내가 있습니다. 주님을 애타게 찾아 나서는 당신에게 내가 자그마한 길을 열어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오히려 내가 주님과 당신 사이의 벽이 되었네요. 미안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당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비록 내가 주님과 당신이 만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서 있더라도 당신은 나를 넘어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당신이 찾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니까요
주님과 나 사이에 당신이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 나선 길에 건너기 힘든 강물이 흐르기에 당신이 작은 다리가 되어주기를 바라건만 오히려 당신은 주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깊은 골이 되었네요. 그렇지만 나에게 죄송하다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비록 지금 한 순간 당신이 주님과 내가 함께 하지 못하도록 갈라서게 했더라도 그것은 정녕 당신이 원하신 바가 아니니까요 비록 지금 당신 때문에 눈이 가려 주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을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핑계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나의 부족한 믿음이니까요
당신과 나 주님을 찾아 함께 나선 이 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끌어주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지만 주님을 가리는 벽이 될 수도 있음을 주님과의 사이를 더 벌려놓는 골이 될 수도 있음을 솔직히 받아들인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안타까운 모습에 주저앉지 말고 서로를 탓하지 않으며 다시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오면 좋겠네요. 당신과 나 서로 함께 하는 까닭은 주님을 만나기 위함이니까요
당신을 통해서 내가 주님께로 나를 통해서 당신이 주님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앞에 서서 주님을 가리고 있는 당신을 탓하지 않고 당신 앞에 서서 주님을 가리고 있는 나를 탓하지 않기 바라며 서로의 부족한 믿음을 탓하고 서로의 믿음을 일으켜주는 아름다운 벗으로 당신과 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묵상기도』
어제는 지구 판공성사를 마치고 지구신부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들어와 새벽피정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침에 제 몸은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완성되지 못한 새벽피정의 취한 글조각에 서린 잔상들을 보며 당신께서 막아주셨군 읊조렸습니다. 어제 복음은 주님 뜻에 엇나가는 것을 비판하기에 너무 적절한 말씀들이었나 봅니다. 오늘은 지구 판공의 마지막 날, 우리 본당의 판공성사가 있는 날이었지만 음악피정이 있는 관계로 익산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지구사제단과 교구청 신부들이 도와줬지만 본당신부 없는 본당 판공을 생각하니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에 얽히기 시작합니다. 음악피정을 마치고 본당에 돌아온 지금은 이제 또 새날의 새벽입니다. 오늘 복음에 피곤한 몸과 마음을 묻으니 그곳에서 당신께서 묻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너무나 본질적인 기본을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의 뜻과 나를 배척하였다. 너는 나와 하늘의 섭리를 믿느냐?”
주님, 황급히 얽히고 흩어진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당신을 향한 믿음에 집중할 시간입니다. 마음의 실타래가 얽힐 무렵엔 늘 당신은 가장 단순한 물음으로 저를 잡아주셨습니다. 오늘처럼...
“세상은 언제나 그들 방식으로만 믿는 사람들, 결국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 나를 배척하는 이들이 너무 많구나. 결국 나는 그들의 배척으로 죽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믿고 기다리는 가난한 마음들안에 다시 태어난단다. 너는 나를 믿느냐?” 주님, 당신의 물음으로 다시 새날을 시작합니다.
아멘.
『Squall』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