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제 2주간 금요일 |
2006-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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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요셉 신부님 | |
마태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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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어찌어찌 하였을 것을, 어찌어찌하였을 것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늘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계명을 되새기며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은 두 배의 몫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으로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앙적으로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일을 하는 것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로만 노동을 했고 단순한 육체노동을 권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노동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계명과 말씀을 새기며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를 일하면서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일상의 노동을 하면서도 늘 하느님의 말씀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들은 말씀을 품고 살아갑니다. 비록 일을 하는 도중에는 그 말씀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도 하느님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 요즘은 기회가 참 좋습니다. ‘판공성사를 보았느냐’는 물음을 통해서 신앙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회가 왔을 때 하느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고 또 그 말씀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명과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기에는 남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잘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진실인양 이야기를 옮기는 것 등의 말은 제외되어야 하겠지요. 이러한 생활이 된다면 세속의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며 생활하는 존재로 사는 수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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