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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오늘은 대림 제 2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의 앞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17장 첫부분은 예수님께서 다볼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서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난 뒤 예수님이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이시라고 제자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함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본 기적과 같은 사건들로 들떠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시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에 대해서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율법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해 있다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와서 백성을 화해시키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준비작업을 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엘리야를 본 것이 곧 말라기(4,5)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할진데, 주님께서는 왜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지 제자들은 궁금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물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의 선구자로 온 엘리야는 바로 세례자 요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화해와 재건을 이룩하지 못하고 참수되었기에 재림한 엘리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으니 곧 뒤따라 오실 메시아도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 메시아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아의 선구자로 온 세례자 요한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고 박해하여 죽였던 것처럼 메시아이신 예수님까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고 박해하여 죽일 것이라고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 예고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기다립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번민,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당장 나 자신을 하늘나라에 올려주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의 기준, 구세주의 모습만을 내세우다 보니 예수님보다 먼저 온 엘리야를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계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안에 태어나려 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내가 편하게 살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기다리는 사랑의 예수님은, 나와 너를 연결해 주고 우리와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실 사랑의 구세주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그뿐입니다. 나머지는 그분께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다림이 자신의 고집과 생각을 던져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기다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2월 16일 대림 제 2주간 토요일/.[강론] 기다림[이창주신부님]
2006. 12. 16. 오후 6: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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