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서 수집광
-박동진 신부 -
책이 쌓여 있는 서재에 들어서면 아직 읽지 못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아쉬워 합니다. 그럴 때마다 대신 다른 것은 얻었을 것이라고 달래곤 합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열 가지 계명을 받습니다. 그것들에 여러 가지 살이 붙고 이리저리 해석이 되면서, 율법학자들에 의해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율법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해석이나 주석은 동양의 사서삼경이나 율법서처럼 그 양이 많긴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초본을 넘어설 수는 없나 봅니다. 500여 권에 달하도록 율법 해석은 했으되, 도무지 지켜낼 수가 없었고 어떠한 것은 모순이 될 수밖에 없기에, 이 율법에 따라 엄격하게 살아가는 바리사이파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500여 권을 통달하는 율법학자도, 그것을 지키겠다고 나선 바리사이파 사람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더 잘 알아보게 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을 마련해 주는 참고서 역할을 하는 율법서와 그것의 실천이 도리어 주님을 못 알아보게 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사 짓는 일은 마땅히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라는 경당문노 (耕當問奴)의 마음이나, 수영을 하려면 몇 권의 수영서적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말이 더 깊이 와닿는지도 모릅니다. 낮은 곳에 오시려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마음을 낮추어야만 비로소 그분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고,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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