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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토
마태오 복음 17장 10-13절 | ||
|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 ||
| 옛날의 과오 민경철 신부 | ||
| 가끔씩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과오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지만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내가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고 후회도 해보지만 오래전의 일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수작을 부렸다는 것이지요. 누가 알기라도 하면 웃음거리가 되고, 곤경에 빠지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오리발을 내밀고, 거짓말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다른 이의 잘못으로 만들기도 하고, 급기야 궁지에 몰리면 알아버린 이를 협박과 회유(?)로 매수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한 번 웃음거리가 되면, 한 번 혼이 나면 모든 게 끝이 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싫어서 범했던 과오를 감추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예수님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그네들의 모습이 또 우리의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이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랍니다.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감춘다고 감추어질 것이 아니지요. 사실 주님은 ‘아프지 않은 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 ||
| 신앙의 척도 | ||
| 낚시할 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옆 사람이 큰 고기를 잡았다 놓칠 때라는 말이 있다. 웃고 말기에는 찔리는 구석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이의 불행을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웃집이 불붙는 것을 보고는 좋아한단다. 겉으로야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잘됐다 좋아하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심사는 없어도 이웃집 불 난 데 키 들고 나섰다’는 말은 오히려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우리의 심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웃집에 불이 났으면 물을 들고 달려가 불을 꺼야 할 텐데 키를 들고 나서다니, 불 난 집에 부채집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의 불행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내 인격의 척도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신앙의 척도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 잴 수 있겠느냐며 쉽게 모른 척할 일이 아니다. 월간 <기독교 사상> 2006년 10월호에서 | ||
2006.12.16.토/옛날의 과오 - 민경철 신부님
2006. 12. 16. 오후 6: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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