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2.

2008. 10. 3. 오후 7:02:20

글자

   
             수락산.


            가을비 개인 오후 
            모처럼 수락산 숲의 오솔길에 오르니
            뜨거운 열정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난 여름이 떠난 자리에
            거무튀튀한 몸의 참나무와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봄부터 쉼없이 달려왔던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솜털 같은 연두빛들이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고
            짙푸른 초록빛 잎들은 매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하루가 가는 줄도 모르고 땀방울을 흘렸던 숲이었다.
            듬성듬성 피어있는 길잃은 분홍빛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낯선 사람을 반겨주는데
            오솔길 옆 참나무의 성긴 나뭇잎 사이로 
            길게 늘어진 눈부신 초가을 햇살이
            한웅큼 쏟아져 들어와  바위 위에 하얗게 부서진다.
            그 산너머로 뿌옇게만 보이던 하늘도
            어느새 높은 곳으로 올라 
            시골의 깊은 강물만큼이나 맑고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살금살금  걸어오는 가을의 발자국 소리도
            그 푸르런 숲이나 하늘을 속일 수는 없었나 보다.

            벌써 가을이라니 !
            나이가 들어서인지 계절의 변화가
            이해타산에 민감한 사람들의 셈보다도 더 빠른 것 같다. 
            훌쩍 떠나버린 여름을 뒤로 하고 
            따스했던 봄날, 화사한 꽃들을 피웠던 나무들과  
            지난 여름의 불볕 더위로
            목말라 하던 바위틈의 분재 같은 소나무
            그리고 수도승처럼 꿈쩍하지 않고 앉아있었던 
            더위 먹은 바위 위에도 엷은 가을색이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는 법이지만 
            누가 말해주는 것도 아닐텐데
            그 숲은 여태껏 한번도 그 때를 놓친 적이 없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자연의 질서이고 완벽한 조화다.      

  

            계절 중에서
            가장 많은 상투적인 말들을 가지고 있는 가을,
            사색, 독서, 기도, 이별,그리움, 쓸쓸함
            그리고 고독이라는 말 등등......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말들이지만
            소소한 가을 분위기가 그러하니 틀린 말들은 아니리라.           
            그 어렴풋한 가을 발자국 소리에 숲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는데
            계곡은 흐르는 물의 몸집을 줄이며 부끄럼 없이 속살을 내보이고
            나무들은 물기를 털어내며 제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들뜨고 시끄러웠던  번화한 도시의 밤거리 같은 여름숲이
            가을을 맞이하면서 노을빛 물든 강변의 갈대처럼 
            천천히 제 몸 속을 하나씩 하나씩 비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초가을,
            숲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봄에 꿈꾸었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누런 들녘과 다르게 쉽게 알 수 없는 일이나
            그렇게 제 몸을 가볍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 동안의 기쁨과 아픔들을 아우르며
            서서히 한시절을 마무리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숲의 삶이라는 것이 
            제 몸을 불리고 키우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포만의 몸을 비우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제 몸 속을 비워내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동물과는 반대로 살기 위해 비운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비우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새로워지는 법이므로
            그 새로움으로 숲은 다시 그 비워진 삶을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숲에 있어서 비움이란 
            삶의 또 다른 시작이고 그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인 동시에
            그곳에 차올랐던 충만을 보완하고 있는 순환 고리인 셈이다.     
            수락산 숲은 
            신기하게도 자연의 섭리를 그렇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낙엽지는 숲은 언제 보아도 쓸쓸하다.
            그 쓸슬함 속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의 무상함과          
            텅 비어가는 숲의 허전함도 배어있을 것이고.....
            머지않아 
            오솔길 저 멀리에 머물던 가을이  다가와
            마른 잎 구르고 스산한 바람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면
            나는 또 수락산처럼              
            밤새 신음하며 그 가을을  앓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레네오.

댓글 2

  • 2008년 10월 4일 오전 12:12

    봄이 오는구나 했더니 어느듯 사색에 잠기는 가을이 왔네요. 정말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수락산을 배경으로 가슴시린 이레네오 형제님의 시, 덕분에 수락산이 名山 이 되었어요....교우님들 10월12일 수락산에서 만나요....

  • 2008년 10월 4일 오후 1:34

    최정혜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가을 잘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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