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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마르타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잃었기 때문에 그 슬픔은 누구보다도 깊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반쯤은 볼멘 소리이고, 반쯤은 원망에 가깝습니다. 주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에도 가시 돋친 대답을 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의 소망은 오빠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다시 살려 내십니다. 이는 마르타의 신앙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르타는 주님이 원망스럽지만,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부활이시요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미사 때마다 주님의 몸을 모시며, 마르타의 신앙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힘이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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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일
◆오늘 기념하는 마르타는 라자로의 동생이며 마리아 막달레나의 언니다. 집으로 찾아온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잠깐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 한다고 (루카 10, 41) 예수님한테 약간의 핀잔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좋은 몫 (관상) 과 더불어 마르타의 몫 (활동) 도 훌륭하다. 아마도 마르타는 예수님의 그러한 충고 덕분에 자기 활동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동생 라자로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확고하고 반듯한 그녀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사랑과 믿음은 결국 죽은 라자로를 살렸다.
마르타는 복음의 이미지 때문인지 요리사와 가정주부의 주보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여러 가지 가정 일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다가가는 좋은 길임을 알려준다. 자연과 농부, 여러 사람의 수고로 얻은 재료로 음식을 장만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방 안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꾸며 가정을 보다 편한 휴식과 사랑의 공간으로 꾸미는 일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가정의 여러 일은 자연을 통해 우리를 부양하고 회복하고 치유해 주는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는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주부가 가정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 같다. 가정의 많은 일을 가사 도우미나 인스턴트식품에 맡기고, 자신은 파출부에게 줄 돈과 인스턴트식품 살 돈을 벌기 위해 더 고귀한 (?) 일을 찾아 나선다. 밖에서의 일이 자아를 실현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한 맞벌이라면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남천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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