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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밀밭에 씨를 뿌립니다. 1970년대만 해도 밀밭은 보리밭과 더불어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밭입니다. 단오가 오기 전 망종 때가 되면, 푸르던 들판이 온통 황금빛이 됩니다. 밀과 보리가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농민들의 얼굴에 넉넉한 미소가 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외국산 밀가루가 들어와 우리나라의 밀 시장을 점령해 버리는 통에, 우리나라 밀은 점차 사라져, 80년대엔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뜻 있는 사람들이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하여, 지금은 예전처럼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저곳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밀의 씨앗들 틈으로 가라지의 씨앗들이 함께합니다.
어릴 때 가라지는 밀과 비슷해서 잘 구별할 수 없지만,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가라지는 강아지풀처럼 생겼습니다. 가라지는 성장 속도가 밀과 비슷하지만, 그 열매는 가히 천문학적이라 할 만큼 많습니다. 게다가 손을 대면 그 씨앗들이 떨어져 그 이듬해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밭을 지배해 버리고 말지요. 밀밭을 가라지가 차지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세상은 하느님의 것인데, 하느님의 권위를 빼앗으려는 자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는 더디게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며 일꾼인 우리가 그 가라지들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가라지들과 관계를 끊어 버리고, 주님께 돌아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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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없다
◆관행농법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잡초는 없애야 할 적이다. 그래서 전쟁을 하듯 독한 제초제를 마구 뿌려댄다. 제초제가 편리하긴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후유증을 남긴다. 작물들이 제초제를 흡수하고,개울과 강과 바다로 흘러 물을 오염시키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오염시킨다.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이 부족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고, 어떤 풀도 약효를 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니 어떠한 풀도 잡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과학적인 눈으로 볼 때도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인간이 재배하려는 식물들의 영양을 빼앗아 먹는 도둑이 아니다. 밭에 난 풀들은 흙의 입자를 덩어리지게 하여 땅을 비옥하게 해준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흡수하여 토양에 모세관을 만들어 줌으로써 식물의 뿌리가 호흡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식물들끼리의 경쟁은 식물의 자생력을 높여 오히려 더 튼튼한 식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태풍이 오면 벼들이 쓰러지는 것도 결국 경쟁관계가 없이 거름과 물을 공급받아 편하게 자라서 자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잡초를 뽑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듯 주변 사람들을 우리의 잣대로 필요, 불필요한 사람으로 재단하지도 말고, 그들을 제거하려 들지 말라고 하신다. 전쟁이 언제나 후유증을 만들듯,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면 서로가 편치 않다. 평화를 잃는다. 세상의 모든 것, 악마저도 필요 없는 것은 없다. 일찍이 유다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
예레미야는 말한다.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7, 5 – 7) 잡초라고 여기며 멀리했던 이웃 (자연을 포함한)을 포용할 때, 우린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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