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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암울하고 험악한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뜻을 증언하기를 꺼립니다. 심지어 아주 간단한 일, 예를 들면 식사할 때, 일할 때, 또는 잠자리에 들 때마저 주님의 기도를 바치거나 십자 성호를 긋기마저 망설입니다. 이를 볼 때, 막상 우리에게 신앙마저 심각하게 위협받는 박해가 닥쳐 올 때, 십중팔구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무시무시한 박해의 칼날은 없습니다. 그 대신, 물질 숭상주의, 경제 지상 제일주의 등 배금(拜金)과 숭물(崇物)이 우리를 괴롭히고 옥죄 옵니다. 어쩌면 총칼로 목숨을 빼앗으려는 박해보다 더 무서운 박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유혹이나 고통을 이겨 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주님께 속한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의연히 겪어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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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믿음
◆“두려워 마십시오.” 오늘 복음 말씀의 주제는 두려움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두려움은 가장 중심된 주제입니다. 두려움이 인간의 가장 근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 언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까요 ?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의 뿌리는 외로움입니다.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잘못된 해결책과 올바른 해결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세상 사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잘못된 길을 걷게 됩니다. 남보다 높은 지위나 재물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태도로 두려움을 감추려고도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성을 내고,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만용을 부리고, 심지어 과잉친절을 베풀거나 자폐적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은 무엇보다 먼저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까지 아시는 하느님께 내 두려움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외로움은 우리 안에 두려움을 키워 우리를 파괴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승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움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참된 그리움으로 승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화전마을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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