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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질병은 지은 죄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평상을 들고 온 사람들이 기특합니다. 대체로 중풍 병자는 소외되기 일쑤인데, 이들은 자기네 공동체 일원으로 삼을 뿐 아니라, 그를 주님께 데리고 와 고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유를 방해하는 죄의 뿌리부터 뽑아내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우리로서는 매일의 삶이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율법 학자들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론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주님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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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머물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과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 물으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만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대사제조차도 심지어 메시아조차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유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과학을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처럼 서로 용서할 능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은 계속 개발해 왔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 서로 용서하는 능력은 그냥 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어도 사람들은 욕심 부리고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 미워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겉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비틀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이 무절제한 욕심과 증오로 파괴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용서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화전마을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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