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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제법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위로는 하느님께 죄송스럽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미안한 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로마에 빌붙어서, 가난한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 일부는 로마에 바치고, 일부는 자신의 가산을 일으켜 세우는 데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편치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인간적으로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청산하고,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를 로마의 앞잡이라고 하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산은 넉넉했지만, 언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외톨이로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면서 그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나를 따라라.” 마태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그렇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가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현재 심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함께하자고 제의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곧 하느님 말씀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당장 응답하고,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할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풉니다. 마태오는 그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함께 걸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수많은 반대자들의 비판에,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당신의 사명을 밝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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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리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마태오는 세관에 앉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마태오는 일과 놀이와 욕심과 죄에 빠져 하느님의 길을 따라 걷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런 마태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욕심과 죄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그곳에서 떨쳐 일어나 나올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내셨듯,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내셨듯,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태오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도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오 같은 죄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바리사이들도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은 마태오처럼 욕심과 죄에 물들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도 무언가에 얽매여 있고, 그래서 거기서 나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을 얽어매고 있는 것은 선입관이고, 자기들만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자랑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마태오가 세관에서 나와야 하듯, 그들도 교만과 선입관에서 나오지 못하면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길 수 없고, 그들의 삶은 방향을 잃고 맙니다.
우리가 너무나 푹 빠져 있어 죄인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나의 세관’은 무엇이며, 거기서 빠져나올 회개의 은총을 청해 봅니다.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화전마을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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