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죄 많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온갖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십자가 곁을 떠날 수가 없었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아가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선 여인의 안타까운 모습과 닮아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울고 있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정하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십니다. 사랑은 이렇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부활은 이렇게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들의 모습이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철저하게 사랑했고, 언제나 그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 * * * *
새 창조
◆올해 부활절 우리 성당 제대의 꽃 장식은 좀 특이했다. 평소 제단에 꽃꽂이보다는 화분과 같은 살아 있는 꽃이 더 큰 봉헌이라는 본당 신부의 의견도 작용했겠지만, 수녀님은 부활절 제단을 야생화 화분을 사용하여 꾸몄다. 예수님께서 묻히시고 부활하신 장소가 정원이었기에, 트리안 화분으로 잔디밭을 만들고, 여러 야생화로 정원을 장식하고 동굴도 만들어 놓았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 (정원)을 꾸미시어 당신이 빚으신 인간을 거기에 두셨다. (창세 2, 8) 태초의 창조와 새 창조 (부활) 의 장소는 같은 정원인 것이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귀신에서 해방되는 치유를 받고 줄곧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까이서 예수님을 도와드렸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도 함께 있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하고 사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기에 12사도는 아니었지만 초대 그리스도교 저작들에서는 그녀를 ‘사도 중의 사도’로 부른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부활하여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마리아 !” 라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신다. 그 소리를 듣고 그분을 동산의 정원지기인줄로만 알고 있던 마리아는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처음으로 토해 낸 그 목소리는 마치 태초에 동산에서 물 위에 떠돌던 하느님의 성령, 하느님의 숨을 연상시킨다. 부활의 정원에서 예수님의 숨결은 그분이 일찍이 마리아의 죄를 용서하면서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던 것처럼, 마리아라는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녀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사도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태초의 창조와 부활이라는 새로운 창조의 장소가 정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에 자연이라는 장소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려준다. 자연을 통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주님은 우리를 새로이 창조하신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남천동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