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을 떠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하게 마련이지요.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하시면서 떠돌아다니시다가 가끔씩 고향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고향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시고,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하십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과 기적들을 듣고 보았음에도, 쉽사리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찾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는 적은 것과 같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족 상황과 성장 배경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분의 말씀과 행위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습니까? 주변의 가장 가까운 분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까? 일상생활 안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삶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이웃을 통하여, 또는 우리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건네고 계십니다.
* * * * *
편견
◆미국 UCLA 의과대학 교수가 졸업을 앞둔 의대생들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 있고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이다. 여기서 아이 넷이 태어났는데, 첫째 아이는 매독균으로 장님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이미 병들어 죽었고, 셋째 아이는 부모들의 병 때문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넷째 아이는 결핵 환자가 되었다. 이런 때에 어머니가 또 임신을 했다. 이런 경우에 그대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
학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유산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매독 환자요 어머니가 폐결핵 환자이며, 이미 낳은 아이 넷도 다 그 모양이 되었는데, 그런 악조건에서 아이를 또 낳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당연히 유산시켜야 됩니다.”
그러자 교수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다. 그대들은 환자들을 대할 때 이 사실을 잊지 마라. 의학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치료하고 수술하고 없애고 할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하느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겸손하고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다.”
학생들의 판단대로였다면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베토벤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기 쉬운가를 알아야 한다. 교육과 경험은 인간을 풍요롭게 살찌우기도 하지만, 그것에 갇혀 헤어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옥죄는 족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남에게 작용할 땐, 편견으로 작용하여 사람을 억누르기도 하고 심각한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알량한 지식에 너무 기대지 말고, 하느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 판단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