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9일 주님 공현 후 목요일

2014. 1. 9. 오후 1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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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9일 주님 공현 후 목요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루카 4,14-22)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인간, 종속적인 존재

-전삼용신부-

 

한 청년이 위대한 항해사가 되는 꿈을 안고 세계를 횡단한 유명한 한 항해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 항해사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 부었습니다. 특별히 항해를 잘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람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장님, 저에게 바람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 바람? 잘 모르겠는데?”

“아니, 위대한 선장님께서 어떻게 바람에 대해 잘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바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은 항해사의 기본이 아닙니까?”

“글쎄, 잘 모르겠네.”

그래도 계속 다그치자 그 항해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바람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어떻게 불게 되고 어느 방향에서 불어올지 전혀 예상도 할 수가 없네.... 다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언제 닻을 올려야 하고 언제 닻을 내려야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령의 이끄심에 어떻게 잘 순종하느냐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오셨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예언된 당신의 사명을 읽으신 다음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미리 복음 선포를 하시지 않고 나이가 서른이 되실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더 먼저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내리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는다는 것이 곧 어떠한 소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언제 성령님이 예수님께 내렸을까요? 물론 영원으로부터 성령님과 함께 계셨지만, 특별히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또 오늘은 나자렛으로 이끌고 앞으로는 예루살렘 골고타 언덕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기름이 곧 성령님의 상징입니다. 세례 때나 견진 때, 혹은 병자성사 때 기름을 바르는 것은 곧 성령님의 임하심을 상징하는 성사적 행위입니다. 그리스도란 곧 그리스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세례와 견진을 받으면서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니 모두 작은 그리스도들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지 못해도 그 바람에 잘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항해사라면 우리 또한 성령님의 이끄심에 잘 순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야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란 성령님을 받는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마치 자녀가 아닌 머슴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큰 멍에를 짊어지는 것처럼 생각 됩니다. 이전에 하던 것들도 이제는 맘대로 할 수 없게 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성령님이 이끄시면 자신을 버리고 그 소명을 따라야합니다. 마치 머슴살이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성자께서도 성령님을 받는 동시에 인류 구원의 소명을 부여받고 오늘 그것을 선포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엇 하나에게는 종속되어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즉, 죄의 노예가 되느냐 하느님의 노예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듯이 누구나가 한 주인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누구도 이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안 믿고 자신은 자유롭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른 무엇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 독립적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상대가 없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도 성자와 성령님이 없이는 온전할 수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느님 없이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무엇에든 종속되어야 하는데 바로 하느님의 머슴이 되고 그 분이 보내시는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소명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종으로서 당신 사명을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게 되어 결국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소명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는 삶이 무엇인지 누구나가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종속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새기신 말씀

-상지종신부-

사제품을 받으려는 사람은 서품을 받기 전에 평생 간직할 자신의 성구(보통서품 성구라고 합니다)를 하나 정합니다. 그 말씀이 자신 안에서 살고, 자신 역시 그 말씀을 따라 그 말씀 안에서 살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품 성구를 정할 때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고민을 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서품 성구와 그것을 정한 사람을 놓고 보면, ’그 신부님에게 맞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 온 것일 겁니다.

 

저의 서품 성구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라는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는 제가 선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나’, 사제로서 나를 부르신 하느님께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 전 서품 성구를 정하기 위해 묵상하던 때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떠한 심정으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셨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들려져야 했던 말씀 이전에, 아들 예수님께 주어진 아버지 하느님의 거룩한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셔야만 할 주님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환호와 경외심보다, 이 말씀을 당신의 입으로 선포하셔야 했던 예수님의 가슴 벅참과 떨림이 제게는 오히려 더욱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제가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봅니다.이 말씀을 선포하면서 앞으로의 삶이 선명하게 지나쳐 갑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그래도 끝까지 가야할 이 길... 떨리는 마음으로, 벅찬 가슴으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렇게 말씀은 제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말씀으로 하느님은 제게 들어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처음에 읽으셨던 그 말씀, 아니 당신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하느님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한결같이 한 길을 가셨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저 역시 제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의 사명을 수행하며 , 주님의 길을 흐뜨러짐 없이 걸어가려 합니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사랑하는 벗님들은 어떠한 말씀을 새기고 사시는지요?

사랑하는 벗님들의 가슴 깊이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지요?

사랑하는 벗님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통해 맡겨진 주님의 사명은 어떤 것인지요?

사랑하는 벗님들은 주님의 사명을 수행하며, 주님의 길을 기쁘고 열심히 걷고 계신지요?

 

* 모든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자신의 온 삶을 담아낼 수 있는 말씀 하나를 정해 자신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사명으로, 자신이 걸어야 할 주님의 길로 삼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벗님들께 감히 제안을 한 번 해 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그분과 함께하는 그 순간

- 이건복 신부-

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소심해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성당 활동도 뒤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자 했지만 책임자로는 활동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한번은 중학교 때 학생미사 독서자로 선정되었는데, 독서대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몇 번씩 성경구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고 제가 독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도 안 틀리고 무사히 읽고 내려와 안도의 숨을 쉰 후에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숨도 한번 안 쉬고 읽더라. 그리고 너무 빨라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일주일 동안 하루에 몇 번씩 성경구절을 읽어 다 외워버렸기에 단숨에 읽어 내려 간 것입니다.
이런 성격 탓인지 저의 가족은 제가 사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뒤늦게 사제의 꿈을 갖게 되었지만, 신학생 시절에도 세미나를 한다든지 대표로 발표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동창들 앞에서 강론 연습을 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제품을 받고 강론대에 서는 순간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울렁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은총의 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저에게 내리신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의 말씀이 바로 그 자리에서 성취되었듯이 저에게도 사제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성사의 은총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이루어짐을 느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은 열려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구원은 우리 각자가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과 함께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한평생을 마무리 하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한테서 완성될 것입니다

-전영동신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21)

“이 성경은 오늘 여러분의 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라고 직역됩니다.

오늘 우리들 귀 안에서는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험담과 음해, 욕망과 쾌락, 시기와 질투, 탐욕과 욕심.

2천년전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해방, 은혜와 평등을 그래서 하늘나라를 선포하셨고 이루셨건만, 정작 오늘 우리들 귀 안에서는 지옥(地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힘’(루가 4,14)을 지니고 선포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성령의 힘을 지닌 사람은 하늘나라를 이루어 삽니다.

그러나 험담과 음해, 욕망과 쾌락, 시기와 질투, 탐욕과 욕심, 악령의 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지옥(地獄)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오늘 내 귀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성령의 힘으로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누리시는 나날이 기쁜 날 되시길 바랍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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