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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사라지는 요한
-김귀웅 신부-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벌어진 음악회에 참석하여 멋진 연주를 듣는 호사를 누린 적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되었는데, 무척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교향악단의 장엄한 연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북치는 연주자였습니다. 북과 심벌즈, 그리고 트라이앵글 세 개의 악기를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그의 몸놀림이 참 열정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교향곡에 북이 등장하지 않을 때도 무척 많은데, 여기서는 북이 전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교향악단에는 많은 악기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화려함을 뽐내고 멋진 소리들을 냅니다. 그리고 악기들마다 제 특성을 뽐내는 협주곡들이 연주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이나 심벌즈, 또 트라이앵글을 위한 협주곡은 들어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그 악기들을 열정적으로 울리는 연주자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배경 같은 북소리가 교향곡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 세례자 요한은 따르는 이들이 무척 많은 인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역할이 예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것뿐이라고 하면서 조용히 뒤로 물러납니다. 모두가 화려하게 무대중앙에 서고 싶지 뒤편의 북치는 주자로 남고 싶지 않을 텐데, 요한은 기꺼이 배경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원영배-
지난해 6월 시카고에 사는 대자 마르코의 동생 에드워드가 캔자스시티에서 사제품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사 제치고 비행기로 날아가 에드워드와 가족을 다시 만난 감격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캔자스 교구 대주교님의 주례로 사제수품식은 거룩하고 아름답게 거행되었고 네 분의 수도회 사제가 탄생하는 축복된 자리에 저도 부제로 봉사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신부님의 수품 상본을 본 순간 좀 별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수품된 다른 새 사제들은 기도하는 성모님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 해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성화를 상본에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신부님은 네 발이 묶인 파스카 희생양이 도살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아무 장식도 없는 어두운 배경 앞에 하얀 어린 양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처절하게까지 느껴진 사실적인 그림에서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르단 강가의 요한은 세례를 주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세례는 죄를 씻어주는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나기를 염원하며 그분께 대한 갈망을 일깨우려는 목적이 더 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그에게 오실 때 벅찬 환성을 터뜨립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의 일성을 들으며 새 사제의 탄생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감격이 새로워집니다. 예수께서 한껏 몸을 낮추고 시작하신 구원의 여정이 이 시대에도 계속되어 새로운 젊은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생명까지 내어놓을 결심으로 내딛는 길에 우리도 동반자이며 협력자로 초대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초대를 축복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