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6일 주님 공현 후 월요일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 마태오4,12-17.23-25)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이 시대에 회개는?
- 이영선 신부-
회개 하나. 훌륭해 지려고 애쓰지 마라!
이미 하느님 품에 안기신 권정생 선생께서 이천년대를 시작하는 해의 정월에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너보다 더 훌륭해 지려고 애쓰지 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더 훌륭해 지려고 하다 보니 이리 강퍅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회개하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느낌을 지금 이 시대에는 권정생 선생의 '훌륭해지려고 애쓰지 마라.'는 말로 알아듣고 싶습니다.
회개 둘. 함께 기뻐하고 싶습니다.
밤새 울고 아침에 누가 죽었는지 묻는답니다. 그런데 사돈이 논 사면 배 아프답니다. 함께 슬퍼하는 일은 쉬이 하는데 함께 기뻐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함께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기에 우리 회개의 또 다른 내용이 있다고 여깁니다.
회개 셋. 나는 너와 다릅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다릅니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할 뿐 다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같아요? 달라요?"라고 여쭈면 "틀려요."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창의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세상에 틀린 존재는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 세상을 사는 방법도 틀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을 뿐. 틀리는 때는 시험 답안지에만 있습니다.
아, 나는 너와 다르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면 너를 대하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상상해 봅니다. 최고만을 인정하고 원하는 이 시대에 회개를 사는 또 하나의 삶이 여기에 있다고 여깁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의 구세주가 아니고 온 인류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지금 이 구절에서 말하는
'갈릴래아'나 '어둠 속'이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희망이신 분'입니다.
그 희망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완성을 향해서 가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언젠가 완성될 하느님 나라는
더 바랄 것이 없는(희망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다니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그분의 소문이 널리 퍼져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마태 4,23-25),
그 모습도 역시 사람들의 '희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을 때와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서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때 가운데에서
언제가 더 기뻤을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처음 희망을 갖게 되었을 때가 더 기쁜 법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쳤을 때,
그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은 죽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완전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희망은 생명과 같습니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희망이 기쁨이 되려면 우선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희망하면서도 믿지 못한다면,
희망으로 기쁨을 얻기는커녕 조바심만 더욱 커지게 되고,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디기는 하지만,
그 희망이 너무 막연하고 불확실해서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때,
그것을 '희망 고문'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이루어지지도 않을 거짓 희망을 주면서 고통을 잊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지독한 절망에 빠뜨리는 경우를 '희망 고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고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희망은 막연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항상 유효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종말의 하느님 나라에서 희망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그 믿음이 없다면, 지금 희망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복음서의 내용들을 옛날이야기로만 생각한다면,
믿을 이유도 없고, 희망할 이유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은 희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절망하게 될 것이고,
고통이 너무 크면 인생을 포기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희망하는 것과 희망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는 것과 믿고 싶어 하는 것도 다릅니다.)
희망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을 스스로 믿지 못하면
그게 바로 희망 고문이 되고, 더 심한 고통이 됩니다.
확실한 희망을 원한다면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지금 믿고 있다면 당연히 희망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희망은 고문이고, 희망 없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그런데 희망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부딪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믿고 희망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병들어 누워 있을 때, 뭔가 중요한 시험, 사업, 소송... 등등의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우리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가
정반대의 결과로 끝나버렸을 때 하느님께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희망보다 더 큰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것이 신앙인들에게는 항상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로마 8,24)." 라고 말합니다.
병이 낫는 것, 시험 합격, 사업 성공, 소송에서 이기는 것... 등등...
그런 것들은 모두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희망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얻으면, 인생을 그냥 끝내도 좋습니까?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생이란 그저 경유지를 거쳐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지금 원하는 그런 것들은
중간 경유지에서 잠깐 스치면서 구경하게 되는 창밖 풍경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희망은 마지막 종착점인 하느님 나라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장막을 걷어라!
-김찬선신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부분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잡히시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이제 공적으로 드러내시고
활동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자면 “Coming out”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Coming out 하셔서 이제 당신의 갖가지 능력을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치유의 능력,빵을 늘리시는 능력,악령을 퇴치하시는 능력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말로 드러내 보이시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 보이고자 하신 것이 당신의 능력이었다면 리 보통의 인간과 똑같은 자기 과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갖가지 능력을 보이심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다는 표시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고 한 다음 예수님의 공생활 제 일성을 소개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당신과 함께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고 당신의 빛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어둠의 자기 세계에 갇혀 있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빛도 비추니 우리가 눈을 뜨기만 하면 볼 수 있고 우리가 문을 열기만 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문득 오래 전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가사가 다 생각나지 않지만 “행복의 나라로 갈 거야”라는 노래지요.
“창문을 열어라”인지 “장막을 걷어라.”인지 아무튼 이런 가사로 시작하여 중간에 “태양만 비춘다면”이라는 가사가 있고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거야.”로 끝나는 노래인 것 같습니다.
태양만 비춘다면 우리는 넓은 들판과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는데, 이제 말씀드린 대로 예수께서 오심으로 신비의 구름을 뚫고 태양빛을 비추시니 우리가 장막을 열어젖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늘나라,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로 나의 창을 여는 것,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