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1999. 6. 11. 오후 10: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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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아주 오래 전,내가 올려다 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정열이 있었고,야심에 불타고 있었다.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내 키가 그보다 커진것을 발견한 어느날, 나는 나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 뿐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나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처럼 살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 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서 쉴곳은 없다. 이제 더이상 그르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  중    략   -------------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당신이 간뒤에, 내 아들을 바라볼때쯤에야 이루게 될까.오늘 밤 나는 몇년 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나갈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 갈 것이다....

   

                                    넥스트 1집" 아버지와 나" 중에서

 

우리 아버지께서는 실직자이시다. 뭐 아이메픈지 때문은 아니고 그보다 전에 건강문제로 회사를 그만두신 상태였다. 건강이 좋아지면 복직하리라는 생각과 함께.

근데 그 회사가 망해버렸다.아이메픈지땜에.홀홀단신으로 중학교 졸업후 상경하셔서 25년 가까이 몸담았던 회사가 무너져 갈 때 아버지께서 하실수 있는 일이라곤 아버지를 아껴주셨던 회장의 빈소를 찾아보는 일뿐이었다.여러 사람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고 밤에 찾아와 행패를 부린 사람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선 가만히 계셨다.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 뒤 4년 가까이 실직 생활을 하셨고 중간 중간 여러 일들을 해보려고 하시는것 같았지만 말씀은 없으셨다.

그때 난 아마도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했던것 같다.가정 환경 조사서에서 부모 직업란에 사업이라고 써서 가져간걸 보면.

 그 때 이 노래를들었다.등교길의버스안에서 이어폰을 낀채...아마 그때 울었던것 같다. 눈 앞이 뿌옇던게 기억이난다. 그리고 그뒤로 아버지의 눈을 마주볼수 없었다.

 지금도 아버지께선 실직자이시다.봄에 시작하신 사업이 잘 안돼서 다시 실업자가 되셨다. 오늘 난 방학을 해서 집에 올라왔다. 밤 늦게 들어 오신 아버지...매우 피곤해 보이시지만 지금 내앞에 서 계신 아버진 삼년전 초라했던 모습이 아닌 어린 시절 강했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술을 한 잔 했지만 우린 별 말이 없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아버지께서 나직이 한 말씀 하셨다. "상조야.믿는다."

이제 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럽다고?아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평생을 어머니를 위해,누나를 위해,그리고 나를 위해 봉사하신 분이 아닌가. 난 이제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질문의 정답을 찾았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예전엔 이순신 이었는지 몰라도 이젠 아니다. 정답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이글을 쓰는데 괜히 눈물이 난다. 박상조 바보같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별 얘기 아니었지만 이 글을 읽고 난 뒤 모두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한번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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