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행]

2005. 1. 7. 오전 11:33:44

글자
 

환희.


   러시아의 작은 왕은 하늘에 별이 나타나 온 세상을 다스릴 최고 지배자의 출현을 알릴 것이라는 조상들의 예언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동방의 지혜로운 왕들 뿐 아니라 러시아의 작은 왕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최고로 높은 지배자를 경배하기 위해 떠나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기쁨에 들떠 예물을 준비합니다.  아마포, 모피, 금, 보석 그리고 러시아의 보리수 나무꿀을 사랑하는 말 바니카에 싣고 떠납니다.  아, 이 기쁨이여 환희여.



고통.


   밤으로는 유난히 빛나는 별을 뒤쫓고 낮으로 쉬는 고달픔이지만 최고의 왕을 경배한다는 설레임이 그를 북돋웁니다.  동방 세 귀인과의 만남에서 작은 왕은 우쭐함에 진주를 들판에 뿌립니다.  “아름다운 러시아의 진주는 아침 이슬보다 훨씬 더 영롱하게 빛나지요!”  “진주는 눈물입니다”  그로부터 그는 최고의 왕에게 줄 예물을 하나 하나 잃어 갑니다.  그분께 드릴 것이 없어진다는 불안과 베풀 수 밖에 없는 현실의 고통이라니.


   아이를 낳은 젊은 여자거지에게 금 한줌과 아마포 한 필을 줍니다.  여인은 작은 왕을 ‘제 마음의 왕’으로 받들어 모신다 말했습니다.  작은 왕은 낯선 곳에서 내 나라를 얻었다고 잠시 기뻐합니다.


   여행을 떠나고 일 년이 흘렀을 즈음에는 모든 자루의 바닥이 보였습니다. 아마포는 헐벗은 사람과 병든 사람에게로, 모피는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로 넘어갔고, 황금과 보석은 가난한 사람과 갇힌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보리수 나무꿀이었는데 그마저도 긴 겨울을 나며 굶주림에 시달린 야생 벌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애마 바니카까지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별을 잃어 버리고 말게 된 것입니다.  밤으로 별을 뒤쫓고 낮으로 쉬고는 했는데 고통스런 이들을 돌보다 밤을 지새우게 된 어느 날부터 별은 점점 늦게 떠올라 나중에는 새벽녘에야 가까스로 그 별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마침내 별은 뜨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까지 잃은 작은 왕은 이제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작은 왕은 낯선 바닷가의 아름다운 항구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출항을 준비중인 갤리선(중세시대 지중해에서 주로 노예들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 한 척에 노예가 죽어 자리가 비었는데, 그 자리에 죽은 노예의 아들을 그 아비 대신으로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젋은 어미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고, 배주인은 매몰차게 거절하며 자신의 하인들에게 어서 아이에게 족쇄를 채우라 명령합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작은 왕의 가슴은 분노와 울분으로 넘쳤습니다.  작은 왕은 앞으로 나서며 소년 대신 자신을 데려가라고 낮은 소리로 말하며 당당하게 배 주인을 바라 보았습니다.



영광.


   작은 왕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갤리선에서 보냅니다.  잔인한 세월, 망각의 세월.  망각은 인간으로서의 그의 존재를 해체시켰습니다.  작은 왕은 오로지 하나의 빛 안에서만 살게 되었습니다.  수십년 전 그리운 고향을 떠나 뒤쫓았던 그 별 말입니다.  작은 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의 세월을 보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헛되이 낭비하고, 분별없이 탕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갤리선 노잡이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작은 왕은 육지로 옮겨집니다.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걸음조차 뗄 수 없는 몸으로 항구의 방파제의 누워 있는 그를 부유한 상인이 거두어 보살펴 줍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갤리선에서 풀려나는 사람들을 집에 데려다가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기셨소.”  작은 왕은 그의 집에서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내며 서서히 기운을 차려갔습니다. 

   그는 지난 추억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옛날에 갤리선을 타게 했던 여인은 이제 저 세상 사람이었고, 이제는 오로지 별과 위대한 왕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왕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부유한 상인의 집을 떠난 왕은 남쪽으로 향하는 큰 길을 따라갑니다.  드디어 네 개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도성앞에 도착합니다.  작은 왕은 도성밖 바위틈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는 데 거기서 늙은 거지 여인을 우연히 만납니다. 

   노파는, 거지도 적선을 베푼 은인한테 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한테 있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삼십년전 자신에게 적선한 어느 남정네에게 자신의 모든 것 - 자신의 마음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자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착하고 좋으신 분이라 생각하면 늘 행복했고, 날마다 그 행복을 맛보고, 삼십 년 동안 마음속으로 환호하며 그 분에게 자신의 신의를 바쳤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었지만 “그러니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작은 왕은 침묵을 지키며 기뻐했습니다.  그 늙은 거지여인은 옛날 그가 도와주었던 젊은 여자거지였습니다.  자신은 한 여인의 마음의 왕국을 삼십년 동안 소유하고 있었고, 지난 삼십년 그는 언제나 왕이었던 것입니다.   작은 왕은 마음속으로 늙은 거지여인에게 말합니다.  “할멈의 마음을 가져가겠소.  언제까지나, 영원히 고이 간직하겠소!” 


   이제 작은 왕은 삼십년 동안 그가 찾아 헤맨 왕을 찾아 도성외곽의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비탈을 올라 가운데 십자가로 다가갑니다.  “작은 왕은 거기 가운데 매달리신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분이 고통 속에서 단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분은 벌써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왕께 바치려고 했던 것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은 왕은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때 옛날에 자신의 왕국으로 선사받은 거지여인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작은 왕의 입술이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 왕이시여, 저의 마음을...... 그리고 그 여인의 마음을...... 저희들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 제가 아끼는 모든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소개하는 책의 이력>


도서명 : 위대한 여행

지은이 : 에자르트 샤퍼

옮긴이 : 김인순

출판사 및 출판연도 : 솔, 2004

 

댓글 2

  • 2005년 1월 7일 오후 12:03

    오랫만입니다. 반갑습니다.

  • 2005년 1월 7일 오후 7:24

    읽으며 소름이 돋았어요. 작은왕, 부유한 상인, 할멈, 글고 위대한 왕. 관계의 사슬, 글고 나비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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