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비유-나는 착한 목자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요한 10.1~10)
묵 상
해마다 부활 제4주일에는 성소주일 복음으로 착한 목자의 비유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 주일을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부르지요.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목자와 양의 비유입니다. 유다인은 본래 유목민이었고, 목자가 양을 치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어서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의 일상생활과 매우 가까웠을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복음 선교가 들음에서 시작되듯이, 부르심도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들음은 하느님의 음성, 곧 착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자신의 양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었습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을 지킬 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심은 주님께서 나를 반드시 지켜주시리라는 확신에 찬 응답에서 시작됩니다. 예전에 <꼬마돼지 베이브>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목동을 도와 양의 우리를 지키는 개가 등장합니다. 사나운 개들이 뛰어다니면서 양들이 지나가는 길을 인도합니다. 그런데 양들을 한데 모으는 그 개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한 꼬마돼지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 돼지를 보고 모두 비웃습니다. 하지만 꼬마돼지가 양들을 향해 살짝 속삭이듯 말하고 나니 그 꼬마돼지는 여러 마리의 개들의 역할을 혼자서 다 해냅니다. 그것도 양들이 줄을 맞추어 이동하고, 양 우리에 안전하게 들어가도록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양들이 꼬마돼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착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자의 음성과 양들의 들음은 어느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목자가 여러 가지 장애와 어려움 곧 이리 떼를 피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양이 그 가르침에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실천이 서로 맞닿아야 참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목자가 양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양들이 착한 목자로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착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결코 양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선 악으로부터 목자와 양을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악에서 지켜달라고 청하십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요한17,15) 목자들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요한17,17)
목자들이 하느님의 기쁨을, 천상의 기쁨을 추구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 13) 흔히 성소라고 할 때, 사제성소, 수도성소, 혼인성소로 구분합니다. 어느 쪽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가 참된 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시기를 보내면서 참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기쁨의 여정길이 될 수 있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가시는 착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번 그 착 한 음성을 듣고 따라가 볼까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아멘.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