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영적독서 및 묵상

2016. 9. 7. 오후 6:40:35

글자

“버림과 따름”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 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5~33).

 

묵             상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에게 누구든지 당신에게 오려면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증오하라’는 말로 알아들으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증오하라’는 것이 아니라 ‘애착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형제자매라는 가족적 유대에 애착을 가지지 말아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애착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상 가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족에게만 애착하는 사람은 큰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모에게만 애착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청년이 되어서도 매사에 부모에게 물어보고 그 결정에 따르기만 합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마마보이로 살다가 가정을 파경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효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내 가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모두 불행합니다. 떠나야 할 때는 떠날 줄 알아야 합니다. 떠나야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물건에 대해 즉,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들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애착을 가지면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저희 광주대교구 은퇴신부님들 중에 전국적으로 유명하신 강길웅 신부님이 계십니다.

강 신부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시골본당 주임신부로 계실 때에 카메라를 하나 사신 적이 있었습니다. 본당에서 사진 찍을 일이 많은데 그 당시 카메라를 가진 사람도 없고 마을 사진관도 10킬로미터 이상 멀리 떨어져 있어서 큰맘 먹고 중고 카메라를 사셨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산 날부터 신부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미사 시간에도 잠잘 때에도 누가 카메라를 훔쳐 가지나 않을까 불안했습니다신부님이 카메라를 사셨다는 소문이 나서 누가 찾아오면 만지다가 카메라 렌즈에 흠집이라도 생길까 불안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빌려달라고 하면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강 신부님께서는 카메라 때문에 며칠을 악몽 속에서 시달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그냥 줘버리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그제야 무소유의 행복이 무엇인지, 자유가 어떤 것인지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내 소유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루카 10,29-37)를 통해 우리에게 한 번 더 가르침을 주십니다. 길에서 강도를 만 나 죽게 된 사람을 사제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 신분과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이들은 가족의 유대에 갇히고, 가진 것에 발목이 잡혀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서로 적대시하는 유대인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기가 가진 재물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했기에 원수처럼 지내던 유대인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가 있었고,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모든 이해관계를 넘어설 때 하느님 안에서 서로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곡성>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가족의 유대도 좋은 것이고, 내가 가진 것도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가족도, 내가 가진 것도 아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안에 내 자유가 있고, 하느님 안에 내 구원이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인들과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이 실천한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라는 굳건한 믿음의 생활과 함께 ‘주님 이외에는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 겼다(필립 3,8 참조)’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바로 우리 자신의 고백일 수 있도록 노력해 갑시다. 아멘.

 

 

고재경 레오 신부 (광주대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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