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1~19).
묵 상
우리나라에는 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서 좀 특이하신 분이 계십니다.
한 하운씨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보리피리”라는 시집을 펴낸 문둥이 시인이 바로 그분입니다.
보리밭이 검푸른 유월, 오라는 곳도 없는 문둥이는 정처 없이 걸어가는데, 힘이 들어 잠깐 보리밭에 주저앉아 쉬며 신을 벗어 털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작은 돌멩이처럼 신속에서 발가락
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 발에서 떨어져 있던 발가락이었습니다. 이 발가락을 집어 들고 한숨짓고 땅에 묻고서 다시 길을 걸어갑니다. 얼마 가다가 쉴 때면 신발 속에서 또 떨어지는 발가락을 봅니다. 이 문둥이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 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 문둥이가 아닌 정말 사람 올시다.”
분명히 발가락이 썩어서 떨어지는데도 자기는 문둥이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히 그분은 문둥이입니다. 하지만 몸은 비록 문둥이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영혼만큼은 문둥이가 아니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문둥이, 문둥이하고 놀려대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만큼은 문둥이가 아니라고 우리들에게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한 하운씨의 이 시는 우리들 자신을 돌아다보게끔 해줍니다. 우리는 그 시인과 같은 문둥이는 아닙니다. 모두 멀쩡한 몸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내 영혼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과연 하느님 앞에서 내 영혼은 문둥이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굳세고 순수한 믿음을, 신앙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단 한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치유를 받은 사람은 열 사람이었지만 단 한 사람만이 믿음으로 인해 육체적 병뿐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한 해방 곧 구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순수하고 굳센 믿음을 지니지 못한다면, 매순간 순간 하느님을 의심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뜻대로만 살아가려고 한다면 비록 내 몸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할지라도 내 영혼은 문둥이와도 같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사실 하느님의 많은 은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것이 마치 우리들의 능력인양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역시 문둥이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은 예언자인 엘리사에 의해 나병이 나은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자기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할 줄 알았기에 자기 민족이 조상대대로 믿어온 신을 버림으로써 자기에게 돌아올지도 모를 여러 가지 박해와 시련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도 역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지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드렸던 사람은 유다인들에게서 개라고까지 불리워가며 그들의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이렇게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얼마만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를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몸만 멀쩡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처럼 의지할 곳이 주님밖에는 없는 사람들, 하느님이 그들의 전부인 사람들, 그래서 영혼이 깨끗한 사람들만이 차지하는 곳입니다.
자신의 몸을 가꾸는 데에만 열중하기보다는 영혼을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는 꾸르실리스따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고재경 레오 신부 (광주대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