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를 각오하여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17~22)
묵 상
우리는 한국 교회의 첫 번째 사제이셨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냅니다. 중국으로부터 전해져 온 천주교는, 국가로부터 사학(邪學), 곧 나쁜 학문이라는 누명을 쓰고,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이고, 목에 칼을 차고, 매를 맞고, 감옥에서 살이 썩어 들어가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사형을 선고 받고 참수형으로 목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태어나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사제가 되었고,
감옥에 갇히어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15살 소년 때에 중국 마카오로 가서 신학 공부를 합니다. 1845년에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사제가 되어, 조선에 들어왔으나, 7개월 만에 관헌에게 잡히어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배교를 강요받았지만, 결국 참수형(향년26세)을 당하셨고,
국가는 경계의 표시로 김대건 신부님의 얼굴을 매다는 군문효수의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모진 박해와 심문을 받고도 김대건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나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이 면하지 못하는 것이거늘,
이제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도리어 나의 소원이니 오늘 묻고 내일 묻는다 해도,
이 같을 뿐이요, 때리고 죽여도 역시 이 같을 뿐이니 빨리 때려 죽여 달라”
즉 신부님은 복음을 따라가는 길에는 조금의 양보나 타협도 없이, 온전히 자신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늘 하느님을 ‘임자’라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무엇인가?
그를 알아보았으되 배신하면, 차라리 이 세상에 아니 난 것만 못하다.”
임자는 우리말로 주인 혹은 친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고자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로 나의 임자,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인들을 공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인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성인(聖人)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교성인들의 삶이 하나같이 순탄치만은 않았기에 우리는 주저하게 됩니다.
즉 신앙의 여정 속에서는 반드시 박해도 있고,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대의 박해는 다른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때문에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들, 고통이 우리를 괴롭힌다면 오늘날의 박해입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뻔뻔스럽게 행동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기도, 단식, 참회하며 자선을 베풀고, 유혹을 극복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한 주간의 피곤함을 풀고 싶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일날 미사에 나올 때, 또 금요일에 금육을 지키기 위해 식단을 바꾸고 아낄 때, 우리는 작은 순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못마땅한 누군가를 따끔하게 쏘아붙이고 싶지만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때,
자녀가 세상 교육에 뒤쳐질 것 같지만 주일학교에 우선적으로 보내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르칠 때, 바로 그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한 작은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신앙은 늘 작은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고, 또 순교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순교란 단순히 목숨을 내놓는 것만이 아닙니다.
순교란 나의 삶 속에서 매순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그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는 그 순간 자신의 신앙을 강렬하게 고백합니다. “바야흐로 이제부터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을 맞이하여, 그분의 믿음을 본받도록 합시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아멘.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