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이정표(1/8)

2005. 1. 8. 오전 11:34:15

글자

천주교 부산교구 남천성당 보좌 최정훈 스테파노 신부
1월 8일 주님 공현후 토요일
요한 3,22-30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강론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 강론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니 예전에 본 어떤 드라마가 생각이 납니다.
쭉 연결이 되는게 아니라 한편씩 다른 주제로 해서 사랑이 무엇일까하는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아마 주인공은 대학교 학장 선거에서 떨어진 중년의 교수와
결혼식 날 신부를 빼앗겨 버린 바보같은 남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삶의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서는데
우연히도 마주보는 건물에서 서로를 발견합니다.
거기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 둘은 자살을 하기보단
자신의 삶을 조금더 연장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이 둘은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와의 사랑,
그 어떤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던 사람의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랑이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아마 마지막 편인 듯 합니다.
신부를 빼앗겨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바보 같은 남자 주인공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여자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도 바보 같은 남자 주인공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드라마의 끝은 그녀의 결혼식 때 주인공이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기로 서로 약속을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많은 풍선을 띄워
그녈 축하하면서 드라마는 막이 내립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사랑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니 가지려 하고
사랑하니 커지려 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달리
사랑하니깐 버리려하고
사랑하니깐 작아지려 하는 모습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도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인 듯 합니다.
자신에게서 세례를 받았놓고선
어느순간 부터 다른 곳에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이 시기할 때,
요한은 함께 시기한 것이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합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더욱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데도
요한은 작아지려고만 합니다.
사랑하니깐 말입니다.
한평생 사랑하려고 했던 하느님
그 하느님을 요한은 자기만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습인 예수님을 높이고
옆에서 단지 그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려는 요한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였으면 합니다.
가지려 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놓아주고 높혀주는 사랑을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랑으로 마음대로 하려 하지 않았나 반성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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