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아내는 2년 정도 심각한 뇌 손상을 부른 뇌종양을 앓다가 지난 목요일 밤에 떠나갔다. 2년 전부터 몸을 못 쓰게 되었고 그래서 피터는 파트 타임으로 일을 전환하고 아내를 간병 해왔다.
반 평생을 같이 살아온 인생의 반려자는 왔던 곳으로 떠나갔지만, 그가 또한 그 즈음의 세월을 일해온 직장이(그는 쉰이 조금 넘었고, 20년도 훨씬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오고 있다), 따뜻한 동료들과 또 다른 삶의 기쁨을 주는 곳으로 빈 마음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점심 시간 즈음 있는 장례식에 동료들을 부치기며 참석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고별사를 들으며 평화로운 이별을 봄이 감사했다. 그들은 2년간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그리고 서서히 작별을 준비 해 왔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그들은 2년간, 함께 한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되새겨 볼 수 있었기에... 떠나는 넬이 참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껴졌고, 피터 또한 편안해 보였다. 넬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기를, 남겨진 자의 상실감을 극복하며 피터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우리가 작은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 길에 스키담에 있는 19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서둘러 기차역에 갔다. 영국에서 공부를 막 마치고 3달 전부터 2년 계약으로 포스닥을 시작한 인도인 아쇽이 역에 있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로테르담으로 외투를 사러 간단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로테르담은 목요일까지는 18시에 모든 숍이 닫는다고, 금요일에 가야 늦게까지 쇼핑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직장이 있는 블라딩겐에 살고 있는 그는, 벌써 왕복 기차표를 끊었다고 조금은 낭패한 기색으로 확실하냐고 거듭 묻는다. 그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역에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중간 지점에 있는 스키담 성당에 나는 간다고 하던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들은 스키담은 목요일에 21시까지 상점들이 연다고 알려준다. 아쇽은 그럼 스키담으로 가 보겠다고 나를 따라 기차에 오른다. 가면서 자연스럽게 종교 이야기가 나온다. 힌두교도라는 아쇽이 미사를 궁금해 한다. 날은 갑자기 추워지고, 외지에서 말도 안 통하고 정보도 없이, 스키담 어디로 가야 상점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기차에 올라 나를 따라오는 그 마음의 먹먹함에 미사에 참례하겠냐고 권유해 보았다. 네덜란드어로 한다고, 나도 전혀 못 알아 들으면서도 간다고. 그런데 너는 가도 성체는 못 모신다고… 그는 그렇게 생전 처음 미사에 참례했다.
덧치 성당은 평일 미사에도 헌금을 걷는다, 바구니를 복사 서는 사람이 들고 다니면서. 오늘도 그가 내게 왔고, 아쇽에게도 바구니를 내민다. 아쇽이 멀뚱 있자 그는 안 내냐는 듯이 묻는다. 우리 본당이 아니고 평일 미사만 참례하며 교무금을 안 낸다는 내 자격지심일까? 3년째 평일 미사를 다니며 왜 그런지 나도 봉헌을 할 때 그가 얼마를 내는지 보고 확인한다는 생각이 들어 왔어서 미사 중 마음에 걸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영국 성당에 갔으나, 인종차별을 하는 문지기에 의해 입장을 거부당한 간디가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떠 오르고...그리고 또한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인가를 되 묻게되고…
성당을 나오는데 아쇽이 그게 뭐였냐고, 몰라서 못했다고 한다. 나는 작은 봉헌이라고, 나도 없을 땐 못 하니 괜챦다고 했다. 어쩌다 바구니가 그냥 가면 봉헌하고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당황해 해서 그가 물어보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와 함께 성당에서 멀지 않은 스키담 센터 쇼핑가로 찾아 갔다. 내가 그와 쇼핑까지 계속 함께 하길 원하는 듯 싶었지만, 돌아갈 길을 알려주며 그냥 떠났다… 홀로 타지에서 느끼고 있는 그의 먹먹함과 외로움,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더 채워 주지 않음에 그가 그닥 괘념치 않기를 청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