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토빗 2,9ㄴ-14 복음 마르 12,13-17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마르코12,13-17)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은 예수님께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물어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못 알아들으면, 정치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신앙 문제는 종교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간의 뜻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시며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이에 사람들은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이 과연 맞는 것이었을까요?
황제는 누가 창조하였습니까? 황제에게 생명을 준 이는 누구입니까?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것이 아닌 황제만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황제의 것 또한 하느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사회 교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부조리, 불평등, 억압, 폭력, 인권 유린 등 수많은 문제 가운데 하느님께서 마음 쓰지 않으시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주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 모든 문제가 주님의 뜻에 따라 해결되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수행해야 할 사명입니다.
빚을 지고 사는 나
반영억 신부
국가경영에 있어서 세금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권력자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더 많은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금을 내야 하는 많은 국민은 어떻게 하면 적게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실 어느 사회에서나 세금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경제민주화니 창조경제니 하는 소리를 밤낮으로 한다고 해서 서민 경제가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편복지를 외쳐도 실제적으로 재원마련대책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식민지 체제의 유다에서 세금문제는 야훼 하느님만을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과 결부되어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세금은 곧 로마의 법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법을 좇아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납세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유혈 진압되고 말았고 그 후 억지로 세금을 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처지나 주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납세를 로마의 노예를 드러내는 혐오스런 짓이며 유일하신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야훼 하느님께 불충하는 짓으로 여겼으나 현실적으로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에 마지못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반면에 로마에 의지하고 있는 헤로데 당원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납부하여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실로 납세는 민중 정서와 로마권력이라는 양날을 지닌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일본과 맞서는 독립군이 있었고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친일파가 있었습니다. 독립군에게 있어서 공출을 당하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니 그에 응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친일파는 자기의 잇속만을 챙기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민족을 배반하였습니다. 일제의 권력에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거부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아첨을 하면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는 어느 쪽을 선택하여도 예수님은 다치게 되어있는 물음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민족주의자들인 군중을 실망케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며 , “내지 말라” 고 말한다면 로마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처벌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하여 “이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시고, 반대자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돌려주라는 말은 빚을 갚거나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국가라는 공동선을 위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말씀입니다.
황제가 만든 은화는 그에게 돌려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니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는 돈만 주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니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빚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자기 속을 숨긴 채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황제도 결국 하느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충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물질의 세금보다도 하느님께 드려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바치고 있는가? 돌아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희생의 봉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돌려드림으로써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서로 다른 탈란트를 받았습니다. 그 모두를 그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것>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마르 12,13-14).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대답하시면 민족의 배반자가 되고, 내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하시면 로마제국의 반역자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묻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세금을 내고 있었을까, 안 내고 있었을까?
당시에 열혈당을 비롯한 일부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세금을 내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시몬'이 열혈당원이었습니다(마르 3,18).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냥 현실에 순응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제국의 꼭두각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세금 문제를 질문한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세금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에 대해서 고민 같은 것은 하지도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꿰뚫어보십니다(마르 12,15).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은데 말로만 고민하는 척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세금을 내셨을까? 모릅니다.
그러나 성전세를 낼 돈을 구하기 위해 작은 기적을 행하셨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마태 17,24-27), 로마 황제에게 내는 세금도 돈이 없어서 못 내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하시자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는데(마르 12,15-16),
어디 다른 곳에 가서 구해 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로마 화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예수님도 바로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돈을 가져오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돈에 새겨진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고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당시에 사용되던 데나리온 은화에는 황제와 황태후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황제의 이름과 황제를 높이기 위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고, 유대인들이 그런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 라고 말씀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라는 말씀만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너희가(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의 지배를 인정하고, 로마 화폐를 사용하고 있으니 세금을 내라.' 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인정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의 정치 질서와 경제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지적하신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정말로 중요한 구절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입니다.
이 말씀은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대등한 위치에 놓으신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치와 종교는 서로 간섭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온 세상 만물은 모두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황제의 것'도 사실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황제의 목숨도, 황제의 권력도, 황제의 나라도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말씀을 종합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 안 된다면 내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면 내지 마라.'가 됩니다.
처음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질서를 존중했지만, 나중에 로마제국이 황제를 신격화하고 황제 숭배를 강요할 때에는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순교했습니다.
세금은 낼 수 있었지만 황제를 신으로 섬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세속의 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일에 세속의 법이 하느님의 법과 충돌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권력이 군종 사제에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뭔가를 요구할 때, 사제이기를 포기하고 군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군인이기를 포기하고 사제로 남을 것인가?
세속이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뭔가를 요구할 때, 세속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신앙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신앙을 지킬 것인가?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야고 4,4)"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법이라면 신앙인들은 '더욱 모범적으로' 그 법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여, 모든 인간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 여러분이 선을 행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1베드 2,13-15)."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