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5일 목요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부자와 라자로 (루카16,19-31)
제1독서<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예레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화답송>시편1,1-2.3.4와 6(◎40,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라자로는 여기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루카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예레17,5~10)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구려움없이 그 잎에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7~8)
예레미야서 17장 5~6절에서는 사람의 힘을 의지하며 주님을 떠난 자에게 내릴 저주가 선언되었다. 이제 예레미야서 17장 7~8절에서는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이에게 내리는 축복이 선언된다. 이 양자를 비교할 때 축복을 받을 사람과 저주받을 사람과의 차이는 단 한가지이다. 축복을 받은 사람은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17장 7절 본문은 문자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서 그의 신뢰가 되는 그 사람은 복이다'이다. 후반부 문장의 주어는 '주님' 즉 '예호와'(yehoah)이며, '신뢰'에 해당하는 '미브타호'(mibtaho)는 '의뢰','의지','신뢰'(시편40,4.5),'희망','신뢰'(시편71,5) 등으로 번역되는 '미브타흐'(mibtah)에 3인칭 단수 접미사가 결합된 형태로 '그의 신뢰','그의 희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명사는 '의지하다','신뢰하다'란 뜻의 동사 '빠타흐'(batah)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그의 의미는 동사와 같다. 따라서 본문은 한 어근을 중복적으로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축복을 받을 사람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대조되는 17장 5절과 관련지어 생각하면,'사람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고, 군대나 군사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그 마음이 주님만을 향하여 있는 그 사람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8)
저주받을 사람 곧 '사막의 덤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축복받을 사람의 상황이 본절에 진술되고 있다. '광야의 메마른 곳','인적없는 소금 땅'(6절)에서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무더위'나 '가문 해'에 그러한 곳에서의 삶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무더위'나 '가문 해'는 아무런 고통이나 걱정을 안겨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서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될'(시편1,3)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에서 '두려워 하다'란 뜻의 동사 '야레'(yare)는 6절의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의 '보다'란 뜻의 동사 '라아'(raah)와 함께 예레미야서에 자주 사용되어, 언어 유희를 보여 주고 있다.
저주받은 사람은 좋은 일(예; 저주의 끝)이 올지라도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축복받은 사람은 가뭄(저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뭄이 올지라도 생명을 지탱할 생수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의 대조는 유사움을 지닌 두 히브리어 '야레'(yare)와 '라아'(raah)의 언어 유희(word play)를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불의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여 부정한 재물을 축적하거나, 하느님의 가르침에 거스르는 길을 걸었다거나 하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라는 묘사로 재물을 남용하며 살았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줍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쓰는 것이 흠이 아니라,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의 삶이 저승에서 고통을 받을 만큼 그릇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저지른 큰 잘못이 있습니다. 바로 ‘무관심’입니다.
문을 여는 작은 수고만 하여도, 불쌍한 라자로의 처지를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리고 그 현실을 보면 그의 마음이 움직였을 터인데, 그는 자신의 관심을 자신과 자신의 즐거움에만 돌렸습니다.
사실 부자는 자신의 집 앞에 라자로가 있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자로를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 차가운 무관심이 부자가 저지른 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 무관심의 문화가 하느님 사랑의 반대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무관심을 극복하고자 교회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 머물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사랑을 전하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길에 나가 상처를 입고 더럽혀지는 그때에, 우리는 성령의 활동을 체험합니다.
문 앞에 라자로가 있었던 것처럼, 교회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우리는 이 시대의 라자로를 만날 것이고, 그들의 현실은 우리 마음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우리를 사랑의 실천으로 이끌 것입니다.
교회 문을 여는 작은 첫 시도에서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사람은 계산과 조건을 살지만 하느님은 무조건이신 분이시다.
(루카16,19-31)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 오늘 본문은- 앞 15절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에서 이어지는 비유 말씀이시다.
자주색과 아마포 옷을 입은 부자, 사제를 뜻한다.(탈출8,28 레위6,10참조) 권위와 사람들의 칭송, 대접을 받는, 그렇게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는 것이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 집은 성전을 뜻한다, 성전 문앞에 있는 가난한 병자다. 가난한- 풋토코스(절대적 가난)- 사람의 힘으로 도와줄 수 없는 가난이다. 그와 다른 가난 페너스가 있다. 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가난이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제사의 제단)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그 병자의 종기를 개들이 핥았을 뿐이다. 곧 부자의 율법(제사와 윤리)의 식탁에서는 배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자(사제)가 양식을 주지 않는 인색과 무심해서가 아니다. 부자, 그의 식탁에 냄새나는 병자가 있도록 허락했던 율법의 자기 의로움이 큰부자(사제)다 그러나 그 부자(사제)의 식탁(제단)의 양식은 그 가난한(풋토코스)이의 배를 채워줄, 종기를 치유해줄 수 있는 양식이 못 된다는 것이다.
(히브10,11)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 영적 치유, 굶주림을 곧 구원을 주지 못하는 헛된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 가난한(풋토코스) 병자는 하느님의 은총(은혜)으로 의롭게, 깨끗해지는 것이다.
(히브10,12)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하느님께만 길이 있고 방법이 있는 것이다.
종기(악성 피부병)는 정결한 어린 숫양의 대속의 피로 깨끗해진다.(레위14장참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의롭게 되는 것이다.(히브10,10)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 가난한 병자는 하느님의 은혜, 자비로 하늘에 들어가고, 부자(사제)는 저승에 갔다. 부자(사제)의 양식은 사람의 뜻, 의로움을 위한 것이었기에 못 갔다. 하느님의 사랑, 자비를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그 모습을~(예레17,5-8)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 오늘 화답송 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 부자의 식탁, 그 자리 양식이 악하다고~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 저승에 가서도 자신이 누렸던 부자(사제)의 권위를 부리려한다. 가난한 라자로를 부리려 한다는 것이다. 부자(사제)는 죽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독서(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 그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否認)가야 한다. 그 자기 버림(부인)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하늘, 부자(사제)의 직분을 땅(肉)의 부자로, 좋은 것으로 누렸으니 하늘에서는 고초를 겪는다 하신다. 제 길에 따라 들어간 것이다. 라자로는- 그 부자의 식탁의 양식, 그 헛된 것으로 배를 불리지 않았기에, 부인했기에 하늘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제 길에 따라 들어간 것이다.
(마태5,3)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 그 저승의 고통 속에서도 형제의 구원을 생각하는 착한 부자(사제)이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인식(認識)일 뿐이다. 죽은 이의 부활을 보고는 믿지 못한다고 하신다.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깨달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구원, 그 사랑, 영광, 그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차래 뵙고도 제자들은 믿지 못해 두려워 떨며 숨어 지냈다. 그리고 실망과 좌절로 옛 모습, 옛 삶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믿음을 같게 된다.(사도행전2장)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우리의 보호자로 약속하셨던 것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신 적이 있다.
(요한11,47-48.53)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 기적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뜻을 위한 표징으로 받으면 오히려 마음이 욕심으로 완악해 진다.
(마태11,23)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 화답송으로 마무리하자.(시편1,1-3)
1 행복하여라! 악인(사람)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2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성경은 사람의 마음은 항상 악하다고 하신다.(창세8,21 로마3,10 참조)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악한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아픈 마음으로 보시며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에 대신 못 박으시고 살리시는 하느님이시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은총의 천주 성령님! 오늘도 주님 안에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ㅇ^*-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6,19~31)
"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4ㄴ~26)
살아 생전에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 있었던, 자기 대문 앞의 거지 라자로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주제넘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멸시했던 라자로를 통해 물 한 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한다. 차마 많은 것을 청하지 못하고 손가락 끝에 찍은 물을 구하는 부자의 상황과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된다.
지상에서 호의호식하며 배불리 먹던 부자는 이제 물 한 잔도 아닌 말라붙은 혀를 식힐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특히 '식히게'로 번역된 '카탑쉭세'(katapsykse)는 뜨거워 메말라버린 혀를 식히고 촉촉하게 해달라는 뜻으로서 부자가 처해있는 곳이 얼마나 뜨겁고 견디기 힘든 곳인지 보여 준다.
살아 생전 거지 라자로를 쳐다 보지도 않았던 부자가 이제 자신의 비참한 처지로 말미암아 라자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상황이 역전된 현세와 내세와의 자리바꿈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는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데, 부자가 왜 물 한 방울을 구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그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오뒤노마이'(odynomai)는 '몹시 아프게 하다', '몹시 괴로워하다', '몹시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오뒤나오'(odynao)의 현재 수동태로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계속적으로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의 상황을 보여 준다.
이 고통은 절대자 하느님의 심판에 의한 고통이며, 여기서 불길은 죄인의 최종적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묵시19,20; 20,10; 21,8).
현세에서 매일 잔치를 벌여 사치와 쾌락을 일삼았던 부자는 죽음과 동시에 헤어날 수 없는 심판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져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애타게 부른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라자로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루카 복음 16장 25절에서 아브라함은 애걸하는 부자의 청원을 들어줄 수 없음을 설명한다. '좋은 것들'로 번역된 '아가타'(agatha)의 원형 '아가토스'(agathos)는 '선한', '유익한', '아량있는'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부자가 받은 '좋은 것들'은 살아 생전 그가 누렸던 부와 명성을 말하며, 동시에 그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배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온갖 부와 명성과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부자는 현세에서 '주는 것'에 무관심했고, 오로지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보면 된다.
아브라함은 서로 통교할 수 없는 공간상의 제약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을 때 고통받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의 악함 때문에 부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위로를 받고'에 해당하는 '파라칼레이타이'(parakaleitai; he is comforted)는 '~곁에', '~가까이'라는 뜻이 있는 접두사 '파라'(para)와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칼레오'(kaleo)의 합성어로서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 있지만, 본 단락에서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파라칼레오'
(parakaleo)의 현재 수동태이다.
이것은 라자로가 계속적으로 외부로부터 위로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느님(욥기15,11; 즈카1,17)으로부터 오는 완벽한 위로인 것이다(2코린1,3.4).
한편, 루카 복음 16장 2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부자의 애절한 청원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우리와 너희 사이'란 결국 저승과 낙원 간의 간격을 말한다.
'구렁'으로 번역된 '카스마'(chasma; a gulf; a chasm)는 '길게 갈라진 틈', '심연'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구렁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보다는, 지옥과 천국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질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가로 놓여 있어'로 번역한 '에스테릭타이'(esteriktai; there is fixed)는 '흔들리지 않게 하다', '강화하다', '확고히 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테리조'(sterizo)의 완료 수동형으로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그 구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 누구도 그것을 옮기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죽은 후에 처해진 운명은 아무도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026년 03월 05일 목요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영화나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반전’입니다.
예상을 뒤엎는 전개는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 속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그러한 반전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두 사람의 지상에서 삶이 저승에서 완전히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비유는 부자가 재물을 가졌다는 사실 그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의 잘못은, 눈앞에 있었던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물의 양이 아니라 나눔의 깊이를 보십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도움’ 또는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 이름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서 누구를 도우시고자 하는지, 또 우리가 구원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도 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땀과 기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또한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나눔은 단순한 외적 행동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기도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의 여정, 특히 사순 시기 동안 기도와 자선, 단식을 함께 강조합니다.
하느님과 멀어졌다면 기도로 다시 그분께 다가가십시오. 이웃과 멀어졌다면 자선으로 다시 사랑의 끈을 이으십시오.
자기 자신과 멀어졌다면 단식으로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십시오.
사순 시기, 우리 안에서도 새로운 회심이라는 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
복음(루카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 부자, 본문 앞 15절에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부자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주색 아마포 옷을 입은 사제’다.(탈출28,28 레위6,3 참조) 자주색 옷은 피(血), 죽음의 옷을 뜻한다. 그리고 그냥 아마포 옷이 아닌 고운 아마포 옷이다.
그러니까 아주 비싼 옷을 입고 권위 의식을 갖고 사람들의 대접을 받으며 호화롭게 살았다는 것이다.
20 그의 집(성전)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부자(사제)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그의 식탁까지 오도록 배려한 부자다. 그러나 그 부자(사제)의 식탁(제사)에는 가난을 해결해 줄, 곧 생명(生命)의 참 양식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히브10,11-12)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 죽어서도 사제의 권위를 누리려 한다. 다 버리고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태23,11)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좋은 것- 부자. 나쁜 것-가난. 우리의 관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5,3-4)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 건너는 길은, 지금 살아있을 때 이룰 수 있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곧 오늘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찾아 믿고 가는 것이다.
(골로1,13)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 다.
(요한14,2-3)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 부활을 위한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 다섯,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를 고집하는 부자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모세와 예언자들, 곧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만을 말씀하신다.(루가24,44) 그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한 말을 듣지 않으면, 곧 하느님의 새롭고 살아있는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깨닫지 못하면, 진리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큰 기적을 보고, 체험을 해도, 믿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나자 살리신 예수님과 라자로를 죽이려 했다. ~
(요한11,53)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요한12,9-10)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 기적은 그 기적의 의미, 뜻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장정)만 오천명을 먹이신 그 표징, 기적을 베푸신 후,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신 것이다.
(마태14,22.30-31)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제자들을 바다로 내 보내셔서 풍랑을 맞게 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병이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그 믿음이 없음을 보게 하신 것이다. 곧 당신께서 뽑으신 사람들은 풍랑, 고난, 시련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고난, 시련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잠언5,21) 21 사람의 길은 주님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분께서는 그의 모든 행로를 지켜보신다.
(예레31,28) 28 전에 내가 뽑고 허물고 부수고 없애며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지켜보았듯이, 이제는 세우고 심으려고 그들을 지켜보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 다시 살리시기 위한 풍랑이며, 고난, 시련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고난, 시련이기에 이겨낼 수 있음이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이해 못하는) 지난 시련, 고난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그 긴 시간을 겪어낸 것이 아니었음을 오늘에서 야 절실히 깨닫는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아니 나를 업고 동행하셨기에 이겨낼 수 있었음을 믿는다. 그래서 라자로와 같은 나의 불행, 환난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다.
(로마5,3-5)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늘 저희 모두의 마음에 충만 하소서. 보이는 시련, 고난이 아닌, 세상 풍랑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