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6일 금요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모퉁이의 머릿돌 (마태21,33-43.45-46)
제1독서<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창세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화답송>시편105,16-17.18-19.20-21(◎5ㄱ) ◎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 그 땅에 기근을 불러일으켜, 양식을 모두 끊으셨을 때, 한 사람을 그들 앞에 보내셨으니,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라네. ◎
○ 사람들이 그의 발에 족쇄 채우고, 목에는 쇠사슬 옭아매었네. 마침내 그의 말이 들어맞아서, 주님 말씀이 그를 보증하셨네. ◎
○ 임금이 사람을 보내 그를 풀어 주고, 민족들의 통치자가 그를 놓아주었네. 그를 왕궁의 주인으로 내세워, 모든 재산을 다스리게 하였네. ◎
복음<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마태21,33-43.45-46)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37,3-4.12-13ㄷ.17ㄹ-2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18~20)
'음모를 꾸몄다'에 해당하는 '와이트낙켈루'(waithnakellu; they plotted; they conspired against)에서 원형 '나칼'(nakal)은 '사기하다', '죽이다'(말라1,14), '유혹하다', '속이다'(민수25,18)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는 재귀형이 쓰였는데, 이것은 '악한같은 일을 꾀하다', '망나니같은 행동을 하다'라는 뜻이다.
요셉이 다가오기 전에 그의 형들이 취한 행동에 대해서 이같은 뜻을 가진 단어가 쓰인 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의 생각이 악하며, 또한 그같은 일을 저지르기로 그들이 마음에 작정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살인하기 전에 화내지 말라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 뿐만 아니라 고향으로부터 100km가 넘는 지역에서 동생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악한 계략을 먼저 마음에 떠올린다는 것은 요셉을 향한 그들의 미움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에 해당하는 '힌네 빠알 하알로모트 할라제 빠' 에서 '빠알'(baal)은 '주인'(탈출22,7), '남편'(2사무11,26), '소유자', '주인' (욥기31,39) 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본문 끝에 나오는 단어 '할라제'(hallaze)는 새 성경에 번역되어 있지 않는데, 형용사로서 '저쪽에' 혹은 '이리로'(here; this)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보라 꿈들의 주인이 저쪽에 있다'이다. 이것은 형들이 요셉의 꿈을 언급하면서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요셉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까지 접근했을 때, 먼 여정과 방황으로 인하여 지치고 초췌해진 동생의 형편없는 모습과 꿈속에서 묘사했던 요셉 자신의 고상하고 당당한 모습을 요셉으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해서 스스로 자기 꿈에 대해 좌절과 불신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37장 20절의 '자'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h)의 원형 '앗타'(athah)는 '시간'을 뜻하는 '에트'(eth)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과거나 미래와는 대조되는 현재(new), 즉 '지금'(여호14,11)이라는 시점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하자'로 번역된 '레쿠'(leku; come)는 '오다'는 뜻이 있는 '할라크'(hallak)의 복수 명령형으로서 '우리 ~을 합시다'라는 뜻을 가져서 앞의 '웨앗타'(weathah; new)와 어울려 매우 선동적이고 긴박감 넘치는 광경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창세기 37장 19절에서는 이 행동의 선동자가 '서로'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볼 때 요셉의 형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저 녀석을 죽여서'에 해당하는 '웨나하르게후'(wenahargehu)의 원형 '하라그'(harag)는 '살육하다', '도륙하다', '죽이다'(창세20,4)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창세기 37장 18절의 '무트'(muth; '죽이려는')와 비교해 볼 때 사람을 죽임에 있어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더욱 더 강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이것은 분노와 원망이 가득차 사람을 처절하게 죽이고자 할 때 사용하는 강한 단어이다.
창세기 37장 초반부터 형들이 요셉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미움이 억제되지 않고 오히려 크게 증폭되어 가고 있다가, 결국 자신의 형제를 참혹하게 죽이고자 계획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첫 시점에서 동생 아벨을 미워하다가 동생을 살인하여 죄의 종이 되어 버린 카인의 악이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창세4,7; 갈라5,16참조).
그리고 '던져 넣고'에 해당하는 '웨나쉴리케후'(wenashillikehu)의 원형 '살라크'(shallak)는 '던져지다'(아모8,3), '쫓아내다'(2열왕24,20)의 뜻이 있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쓰레기를 버리듯이 구덩이에 요셉의 시체를 버리려고 하는 형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요셉에 대한 분노의 깊이를 짐작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과 도덕마저 바로 이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음을 보여 준다.
또한 가나안 땅은 다양한 기후와 지형이 있어서 산악 지대, 평야 지대, 계곡, 사막 등이 혼재하는 곳인데, 요셉이 형들을 찾아 떠난 헤브론에서 세켐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km가 되며, 산지대로 연결된 지역으로 여러 종류의 짐승이 살았다.
더욱이 여기서 '사나운 짐승'으로 번역된 '하야 라아'(hayah raah)는 '야생 동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관용구이다.
따라서 형들의 계획은 죽이려는 것 뿐만 아니라 살인을 행한 후 시신을 처리하는 것까지도 생각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는 원문의 뜻은 '그의 꿈들이 무엇이 될지를'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당돌한 꿈 이야기에 심한 분노를 갖고 있었기에 조롱하는 어투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요셉을 죽이면, 임금이 되겠다던 요셉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주인의 행동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공들여 포도밭을 일구었는지 잘 드러내 주는 표현들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묘사가 확인하여 주는 것은 이 밭의 소유자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주인’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에게서 저항과 반역의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주인이 자기 몫의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을 죽여 버립니다.
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종들을 보내지만, 같은 소행이 되풀이됩니다.
주인은 끝까지 사랑과 신뢰로 자기 아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아들이야말로 소유권자 이기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며 죽여 버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죽이려 하는데, 그가 자신들을 제치고 아버지의 상속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에게 학대받거나 조롱당하는 일이 일어나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만드셨고 살기 좋은 곳, 포도 열매가 잘 맺히는 곳으로 일구시어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진심을 조롱하고 그분의 사랑을 회피하여 온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이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러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 포도밭의 주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반역과 저항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되찾는 것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삶의 질서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이미주신 하느님나라를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복음(마태21,32-43.45-46)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요한1,17.29)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마르1,8)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 하느님의 외아들(獨生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흙인 육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심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곧 용서, 자유, 평화, 생명, 구원의 길, 진리로 믿는 것이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 제물로, 곧 새 계약으로 내주신 그 사랑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며 하느님께 드려야 할 믿음의 열매, 소출이다.(이사43,7) 그 모든 것을 성령께서 깨닫고, 믿도록 이끄시며 증언하신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 첫 창조의 에덴의 모습이다. 지금의 세상이다. 소작인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곧 보이는 포도밭(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 포도밭(세상)에 감추어진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세상의 만물이며 성경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자신의 죄로 죽으시고 살리시는 사랑이다. 소작인인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찾고 만나야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고 살았던 율법(제사와 윤리)의 나를 부인하는 그 죽음으로....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가!)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 하느님과 외아들(獨生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영광드림이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비유하신 말씀이다. 곧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의 행위로는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감사, 영광드림이 나올 수가 없다. 온전하게 지킬 수도 없는 열심한 행위는 짐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 감사, 영광드림의 소출을 낼 수가 없어 죽인 것이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 드릴께 없으니까.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 외아들 예수를 당신의 뜻인 구원자로 존중하라고, 곧 다시 깨닫고 구원 받으라고 보내신 것이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 외아들, 상속자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는, 그 구원의 진리를 모르기에 죽인 것이다. 빛인 하늘은 어둠인 땅의 것을 들일 수가 없다. 곧 하느님은 빛이신 맏아들, 상속자인 외아들 예수님만 받으신다. (탈출13,2 참조) 그래서 첫 아들로 오신 그분의 지체가 되어야 받는 상속, 구원을 받는다.
(루가2,6-7)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거기, 지금, 현세의 성경 말씀 안에서, 자신이 죄인(짐승)임을 아는 자만이 외아들 예수를 구원의 진리로 낳을 수 있다. (깨달을 수 있다) 죄인들의 진리의 양식으로 깨닫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율법의 행위로 자칭 의인(여관)이라는 이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 깨끗하다고, 만족해하는 그의 마음(여관)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 포도 밭 밖- 예루살렘 성문 밖이다.
(히브13,11-12) 11 대사제는 짐승들의 피를 속죄 제물로 성소 안에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 짐승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웁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 *새겨들읍시다. 하늘의 집, 성전을 짓는 다는 율법학자들이 내버린 돌, 곧 자신들의 뜻을 고집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 말씀이신 예수님을 버렸지만, 그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 곧 하늘의 성전, 하느님나라를 대신 이루신 놀라운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자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믿지 않은 것이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의 성전, 하느님나라로 오신 것이다.(요한1,9-12 참조)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 세리와 창녀들처럼 예수님을 대속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고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고집하며 믿음과 감사, 영광 드림의 소출을 드리지 못하는 제사와 윤리의 신앙으로 영원한 멸망을 맞을 것인가, ‘오늘 선택하라’ 하심이다.
(예레17,5)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시편으로 오늘 고백의 기도를 드리고자 한다.
(시편73,22-26) 22 저는 멍텅구리,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러나 저는 늘 당신과 함께 있어 당신께서 제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24 당신의 뜻에 따라 저를 이끄시다가 훗날 저를 영광으로 받아 들이시리이다. 25 저를 위하여 누가 하늘에 계십니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26 제 몸과 제 마음이 스러질지라도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 ~아멘!!!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율법신앙으로 이미 계신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자라게 늘 말씀 안에서 머무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태21,33~43.45~46)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자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35~39)
'소작인들'로 번역된 '게오르고이'(georgoi; tenants; husbandmen)는 '게오르고스'(georgos)의 복수 주격으로서, 농토를 일정 기간 차용하여 일정한 비율의 세를 내고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가리킨다.
여기 포도원의 소작인들은 이처럼 주인과 계약을 마친 일꾼으로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마르12,12; 루카20,19).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는 이 소작인들이 행한 악행이 세 가지로 묘사된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동사들이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핍박받은 종들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매질하고'로 번역된 '에데이란'(edeiran; beat)은 '데로'(dero)의 부정 과거형인데, 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레위1,6; 2역대 29,34; 35,11).
말하자면, '데로'(dero)는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는 희생적 고난의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서도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맞는 것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동물들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과 같은 희생을 말한다.
그리고 '죽이고'로 번역된 '아페크테이난'(apekteinan; killed)는 '아포크테이노'(apokteino)의 부정 과거형이다.
'아포크테이노'(apokteino)는 '죽이다'는 의미의 동사 '크테이노'(kteino) 앞에 강조하기 위해 '아포'(apo)라는 전치사가 결합되어 처절한 죽음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겪게 될 순교적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로 번역된 '엘리토볼레산'(elithobolesan; stoned)은 '리토볼레오'(lithoboleo)의 부정과거형으로서 '돌을 사람이나 짐승에게 던지다'는 뜻이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의로운 박해를 받는 예언자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루카23,37; 사도7,58.59).
여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들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을 사악한 방법으로 계속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된 소작인들은 바로 그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제 마태오 복음 21장 36절에는 주인이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팔린'(palin; again)은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음을 가리킨다.
주인의 종들을 잔인하게 죽은 소작인들을 즉각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자비로운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있다.
'많은'으로 번역된 '플레이오나스'(pleionas; more than)는 '플레이온'(pleion)의 형용사 비교급으로서, 보다 많은 수의 종들이 파견되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비유되고 있는 소작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인내하시면서, 그들이 뉘우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또 한번의 기회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악한 소작인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주인의 사랑과 인내를 저버리고, 처음처럼 주인이 보낸 종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아들은 존중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내게 된다.
마태오 복음 21장 37절에서 '마침내'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last of all)은 어떤 일의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수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주인의 비참한 심정을 가리킨다.
여기서 '존중해 주겠지'로 번역된 '엔트라페손타이'(entrapesontai; they will respect)는 '엔트레포'(entrepo)의 미래형으로서, '엔트레포'(entrepo)는 '~안에'라는 의미가 있는 전치사 '엔'(en)과 '돌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트레포'(trepo)의 합성어로서 '빙 돌다',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가진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존경하다'는 뜻과 '부끄러워 하다','무시하다'는 두 가지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이 바뀌어, 예수님께 대해 공경해 줄 것을 바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기대감이 들어 있다.
특히 시제가 미래라는 것은 악한 소작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주인의 심정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21장 38절 이하에서 주인의 아들을 상속자라고 하면서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고자 한다.
여기서 '상속자'로 번역된 '클레로노모스'(kleronomos; heir)의 첫번째 의미는 '기업', '유산', '유업'(heritage)이다.
구약 성경에서 '유업'의 뜻을 가진 '나할라'(nahalah)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되었다(신명20,16; 21,23).
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하느님께서 주신 유업으로 알고, 자기 지파 안에서만 상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기를 통해 가나안 땅의 유업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유업을 희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인들이 메시아가 도래할 때 갖게 될 것으로 믿었던 몫이었다(다니12,13).
이 유업에 대한 희망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결되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때 새로운 유업을 가질 것을 기대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러한 유업을 희망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업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적으로 이루어졌다(갈라3,16).
그러나 악한 소작인들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유업을 차지하는 대신에 그를 맞서서 죽이려고 했다.
그 원인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아관이 죄에서 구원을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관이 아니고, 자신들을 현실적인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영적인 유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크나큰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
2026년 03월 06일 금요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김재형 베드로 신부)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즈는 자신의 연구에서 처음으로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하며, 조그마한 변화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뒤 이 표현은 작은 선택이나 사소한 사건이 생각하지 못한 큰 결과를 불러오는 상황에 대한 비유로 널리 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는 사건을 만납니다.
요셉을 질투하던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르우벤은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창세 37,21)라고 말하며 요셉을 구합니다. 그 선택이 요셉을 살렸고, 훗날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에서 모든 가족의 생명을 구합니다.
르우벤의 한마디가 온 가족을 살리는 변화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지만 상황은 반대입니다.
상속자를 죽이고 재산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소작인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택은 생명을 살리고, 어떤 선택은 상처와 멸망을 가져옵니다.
작은 결심 하나, 사사로운 말 한마디, 짧은 기도 한 줄이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첫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따뜻한 날갯짓이 누군가에게 생명의 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인간의 욕망, 고집은 참으로 집요하고 질기다. 역사는 하느님의 용서의 역사이다.
(마태21,33-43.45-46)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 에덴의 모습이며 우리 삶의 현장, 그 이중적 의미를 뜻한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출은 선이 악을 품고 대신 죽어 생명을 주는 그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진리로 *믿어 그 하늘의 대속, 그 사랑에 감사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앞절에서 믿음을 말씀하셨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18) 라고 선포 했을 때 세리, 창녀, 그 죄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없애시고 의인으로 해 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그러나 스스로 ‘의롭다’하는 사제와 원로들은 그 요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자신들은 매일 제사 드리고 율법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열심히 지키고 있었기에 자신들은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속을 받을 필요도 없고 대속을 진리로 믿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에덴의 뱀의 유혹으로(現世는 거짓 가르침) 하느님의 말씀을 善과 惡의 법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았으니 자유를 주시는 신앙이 아닌, 오히려 짐이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소출, 곧 자신들의 창조 목적인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는 그 소출을 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 자신의 모든 더러운 죄를 십자가로 용서 받아 거저 의롭게 된 이들은 당연히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그 소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에페1,12)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자기의 의로움으로는 구원, 하늘의 생명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 자기 그 의로움, 그 열심을 의지하는 이는 소출이 없기에 죽이게 되는 것이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 상속자를 통한 상속 재산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이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을 진리로 믿어야만 받는 구원임을 그들은 놓친 것이다.(요한14,6참조)
(골로3,24) 24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은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되십시오.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 외아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의 자기 의로움이, 그 길이 헛된 신앙이라 하셨기에 성 문 *밖에서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것이다.
(레위4,20-21) 20 속죄 제물로 바치는 황소를 처리하듯 이 황소도 그것과 똑같이 처리해야 한다. 사제가 이렇게 그들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면 그들은 용서를 받는다. 21 그리고 그는 그 황소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앞서 말한 황소를 태우는 것처럼 그것을 태운다. 이것이 회중의 속죄 제물이다.’
(히브13,12)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대답이다. 자신들의 그 스스로의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 집은 성전(신앙)을 의미한다. 곧 성전, 신앙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페4,15)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러나 율법(제사와 윤리)의 자기 의로움을 고집하는 이들은 말씀, 예수님을 버린 것이다.
(마르7,13)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릿 돌(중심), 곧 우리의 머리, 안식처, 피난처, 구원을 이루셨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것,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와 상속 재산인 하늘의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 자기 의로움이 큰 사람일수록 그 자기를 고집하는 것은 참으로 질기다. 그 고집이 예수님을 죽였으니 무섭기까지 하다.
♱ 천주의 성령님! 저희 죄인들을 당신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가 하느님 이타의 사랑, 그 진리에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의탁하나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