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1)

2024. 11. 29. 오후 3: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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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2일 월요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1)

 


1독서<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이사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화답송>시편122,1-2.3-4ㄱㄴ.(4ㄷㄹ-5.6-7.)8-9(1)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예루살렘의 평화를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안하리라. 너의 성안에 평화가 있으리라. 너의 궁 안에 평안이 있으리라.” )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복음<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마태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2,1~5)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4)

 

이사야는 2장 2절에서 종말에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성전으로 모여들 것을 예언하였고, 이사야서 2장 3절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임을 예언하였다. 

이제 이사야서 2장 4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날에 주님의 판결로 인해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당신의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면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희망에 찬 예언이 제시된다. 

 

여기서 평화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원죄와 완고한 불신앙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하느님의 옥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옥좌에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 원수되었던 하느님과 화해하여 그분에게서 내려오는 평화를 나누어 갖게 된 것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이루어질 평화로 볼 수 있다. 

전쟁의 무기를 모두 농기구로 바꾸어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는다는 예언이 바로 메시야 시대에 이루어질 완전한 평화를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이것은 장차 메시야에 의하여 이루어질 평화시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으로 이 땅에 시작된 메시야의 통치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성취될 메시야의 통치로 인한 완전한 평화의 시대를 내다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와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는 같은 뜻의 대구 구조를 이루는 문장이다.

앞의 것은 민족(나라)들 사이의 분쟁 해결의 측면을 강조하고, 뒤의 것 잘못을 어긴 자들, 각 개인을 바로 잡는 교정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재판관이 되시고'에 해당하는 '웨샤파트'(weshapat)나 '심판관이 되시리라'에 해당하는 '웨호키아흐'(wehokiah)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 행위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이 구절에서 주님의 통치로 이루어지는 평화의 나라 전쟁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평화를 구가하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칼과 창은 전쟁때에 필요한 무기이지만, 보습과 낫은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 필요한 농기구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참전한 자들이 평화로운 때에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고, 또 농사일을 하다가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전쟁터로 나가곤 하였다. 

따라서 농기구를 잡은 손이 무기를 잡게 되고, 또 무기를 잡은 손이 농기구를 잡게 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미래의 일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미래의 평화 시대를 예언했을 것이다.

 

'보습'(plowshare)은 쟁기의 술바닥에 맞춰 끼우는 삽처럼 생긴 쇠조각을 말하며, 씨를 뿌리기 위하여 밭을 갈 때 사용하는 농기구이다. 

그리고 '낫'(pruninghook)는 곡식을 추수할 때 이삭을 자르는 도구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전쟁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칼과 창을 파종과 추수때 사용하는 농기구로 만들 것임을 지적하여, 더 이상 살상 무기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평화 시대가 장차 도래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와 마찬가지로, 본문은 절대적 부정의 의미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부정어 '로'(lo) 이끄는 문장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같은 뜻의 대구를 이루는 강한 부정문을 반복 사용하여 두 번 다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 그칠 것이며, 완전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 예언은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전쟁이 자주 발발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마태24,7)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모든 분쟁과 싸움, 다툼이 종식되는 완전한 평화, 곧 그리스도 재림 후에 이루어질 평화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 정천 사도 요한)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카파르나움에 주둔하던 로마군 지휘관으로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던 그는아마도 이 고을에서 손꼽히는 세력가였을 것입니다

그런 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한껏 낮추는 자세를 보입니다

차원이 다른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알아본 것입니다이 인식은 믿음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군사들을 복종시키는 권한을 예로 들며이보다 더 큰 권한을 지니신 분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굳이 자기 집에 모시지 않더라도 권위 있는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종이 나으리라 확신하는 모습에서우리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한과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아본 이상자기 신분(이방인)이나 직책(백인대장)이나 체면(세력가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노력하였고결국 어떤 유다인도 들어 보지 못한 예수님의 찬사를 듣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약한 믿음 때문에 때로 질책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태오 복음서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8,26; 참조: 14,31; 17,20).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그분의 현존과 능력을 의심할 때가 때로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고 보잘것없는 믿음이라고 자책하기보다는백인대장이 보여 준 확신에 찬 행동들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17,20)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께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 드리도록 노력합시다

어느덧 크게 자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감탄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제1주간 월요일]

 

외아들 예수(모노게네스-하나로 갖는 이)

 

(마태8,5-17)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다. 곧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을 사는 사람들이다. 백인 대장은 로마의 군인이다. 돈과 명예(義), 그 세상 힘의 원리로 사는 세상의 대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하시러 그 저주의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인 로마 군인이 먼저 다가온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중풍 또한 카파르나움이다. 중풍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病으로, 우리의 머리, 주인이신 그 주님의 뜻,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가서 고쳐줄까?’란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죄인들을 찾아 오셨듯이, 오늘도 찾아 가시어 그 잘못된 생각(중풍- 카파르나움)을 고쳐 주신다는 말씀이시다.

 

그러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 자신의 욕망, 뜻(명예, 의)을 위하여 자기 스스로 지은 카파르나움의 지붕은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기 부인(否認)이 된 사람의 말이다. 그 자기 부인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청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한 말씀으로 고쳐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곧 주님의 말씀이 생명수, 양식임을 아는 사람이다.

 

(아모8,11) 11 보라그날이 온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세상의 물, 곧 사람의 말이다. 인간들의 욕망, 명예, 의(義)를 위한 물(말)은 헛된 말, 생각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의 물(한 말씀)은 살아 계시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 하시며, 영원한 하늘의 생명으로 이끌어 가신다. 곧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아는 것, 깨닫는 것이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요한7,3참조)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많은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이 아닌, 그 머리의 지체, 꼬리인 자신의 뜻을 위한 말(물) 로 중풍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 중에, 그것도 이방인이 그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아는 자기 부인이 된 사람이 請하는 한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 감동을 하신 것이다.

박사학위 다섯 개를 다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그들을 위해 희생을 한, 슈바이쳐 처럼, 그래서 세상에 칭찬과 명예를 받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청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한 말씀을 갖는 이들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말씀은 생명수(물)와 함께 씨를 뜻한다. 곧 주님의 말씀, 씨를 갖고 가지 못하면 씹을 것이 없어 이빨끼리만 갈리는 ‘그 이를 갈 것’이라는 말씀인데 곧 말씀을 가지고 가지 못하면(깨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해도 그곳이 바로 ‘이를 가는 곳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열병-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 의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열심, 열성, 의로움으로 스스로 용서, 구원을 위한 삶을 살려하니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 열이 나는 열병(熱病)이다. 그 헛된 열성(열병)의 손에 참된 열성이신 주님을, 말씀(물) 대시니(부으시니), 열이 가신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드러누워 있던(죽었던) 여자가 하늘로, 주님의 뜻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시중을 들었다- (디아노코스-말씀으로 섬기다) 곧 말씀이 하늘의 용서, 생명임을 깨달아 그 용서, 생명의 주님으로 섬겼다는 것, 믿었다는 것이다. 그 열병의 다른 모습이 저녁의 상태이며 마귀 들림이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저녁- 구약, 곧 율법(제사오하 윤리)에 멈춘 신앙이 마귀 들림이다. 그래서 아침-신약으로, 곧 그 율법을 당신의 목숨으로 대속하시고 완성하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 구원의 생명, 새 계약으로 반드시 건너와야(파스카)한다.

율법으로는 죄만을 알 뿐이다. 율법의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로움을 전가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느님나라다.(요한14,6 로마3,20-25참조)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위한 선악의 말씀, 그 둘로 먹고 가르치며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자는 것이 뱀(악령*-마귀)의 유혹을 먹은, 곧 선이 악을 대속해 생명을 주시는 한 말씀을 선악의 그 둘로 준 거짓말, 그 거짓가르침으로 중풍, 열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 심판을 주는 그 선악의 둘, 그 거짓을 쫓아내고 선악의 둘의 말로 힘들고 지친 그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신 것이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우리의 병, 질병, 온갖 죄들을 예수님께서 다 떠맡으시고,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온갖 더러움을 다 씻어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신(히브10,1-22) 성령께서도 증언하신 그 새 계약의 구원, 생명의 한 말씀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8,5~11)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8ㄴ~9)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uk eimi hikanos;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에서 '히카노스'(hikanos)는 '고려할 만한', '많은', '가치있는', '적합한', '알맞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유대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고쳐 주어야 하느냐'(마태8,7참조)는 질문에 대해,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등의 이방인과의 친교를 금지한 유대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백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마태오 복음의 주독자층인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면서, 백부장과 같은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8ㄷ절의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에서 '그저'에 해당하는 '모논'(monon; only)은 '단순히', '오직', '다만'의 의미를 가지고서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a word)는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말해 주십시오'이다. 

그는 주님의 '말씀'(로고스)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이방인 백부장이 바란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주문을 외운다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을 입으리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부장도 마태오 복음 8장 9절에서 남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는데, 이러한 권세로 인해 교만하거나 방종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권세를 가진 분을 분별할 줄 알고, 그분에게 그 권세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이 겪고 있는 질병이나 이 세상 만물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런 권세를 행할 수 없었기에,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진정한 권세를 가지고 질병까지도 복종시키는 예수님 앞에서 그분의 권세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고난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백부장은 자신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그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질병을 유발시키는 더러운 영들을 향해 명령하시면, 그 세력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와 위상과 그 능력을 깨달아,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41202일 월요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이사 2,3).

1독서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집으로 모여 오는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복음 말씀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때 기적과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지 알려 줍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탄시켰고, 그에게 필요한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들음+믿음=기적’.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기적의 공식’, ‘은총의 공식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어 보셨나요? 수학 공식은 그대로 대입하면 답을 얻게 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기적의 공식을 오늘 하루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잃어버렸던 신앙의 기쁨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린 하루, 그분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며 감탄하시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복음(마태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 카파르나움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고을, 성전으로 그 아래 사는 자체가 질병이다.(루카10,15) 곧 카파르나움은 육을 위한 율법, 세상의 원리와 같은 곳이다. 주님께서 우연히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그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들어가심이다. 곧 어둠에 빛으로 들어가심이다.(요한1,9-14참조)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ㄱ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 카파르나움의 지붕 아래 사는 이는 ‘자격 없음’이다.

 

8ㄴ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 사람의 노력, 열심, 행위가 아닌 말씀이 이루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로마 백인대장 곧 세상이 말씀의 힘, 능력을 깨달았음이다.

 

10 (그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모든 만물은 말씀으로 창조 되었고, 말씀으로 보존, 지탱하고 있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베드3,7) 7 지금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말씀을 먹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존재, 생명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사람의 힘인 카파르나움의 빵만으로 사는 것, 죽음이다. 하느님의 힘인 말씀으로 사는 것이 생명, 곧 치유, 구원이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동쪽과 서쪽, 모든 민족이 말씀으로 받는 구원, 생명이다.

 

(요한1,12-14) 12 그분(말씀)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구원)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뜻, 은총과 진리, 그리고 용서, 사랑, 평화, 안식, 구원을 먹는 것이다. 한 말씀 안에 다 있는 것이다.

 

사제☞ 백인대장의 종을 아끼는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자격 없음, 낮추는 모습을, 특히 “주님의 한 말씀이면” 낫게 되는 믿음을 담읍시다.

 

☧ 아버지!

고통속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말씀으로 치유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한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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