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금요일(금식과 금육) - 요한 18,1 -19,42

2009. 4. 23. 오후 2:58:19

글자
 

4월 1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금식과 금육) - 요한 18,1 -19,42

누구를 찾느냐?

 (4월1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말씀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셨다." (요한 18,4 )

 

묵상

 오늘 우리 함께 여행을 떠나도록 합시다. 즉 예수님께서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는 또 다른 골고타들이 있는 몇몇 장소를 찾아가 봅시다. 여기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다르푸르(동 아프리카의 수단) 피난민들으 비참한 현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폭력, 그리고 에이즈의 수많은 희생자, 세상의 많은 곳에서 폭행을 당하며 팔려 다니고 강간을 당하는 여인들, 북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 로라이마(브라질)의 가난한 사람들, 세계 여러 도시의 방랑자들. 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우리는 종이를 주우며 홀로 버려진 채 살아가는 노인들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계시는 상황들은 무한히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모르는 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문제와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나 욕망에 갇혀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에 늘 계십니다.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상황들과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누군가의 더 큰 고통>


   끔찍한 고통, 그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계시는 분들을 바라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던지 신음까지 터져 나옵니다. 슬픔이 얼마나 깊던지 식음까지 잊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무거운 십자가가 다가와 도무지 떠나갈 줄을 모릅니다. 이웃들이 던지는 위로조차 이제는 지겹습니다.


   이런 분들 앞에서 “인내는 모든 것입니다. 고통은 은총’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옵니다.”라고 말씀드려보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분들의 반박에 할 말을 잃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시련,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혹독할 뿐, 그저 참혹할 뿐, 그저 죽고만 싶을 뿐...”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의미 부여입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대한 가치 부여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작은 고통을 예수님의 수난과 연관시키는 일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합치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견뎌내고 있는 이 끔찍한 고통, 이 깊은 슬픔, 이 아린 상처가 조금이나마 완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그 누군가가 겪고 있는 더 큰 고통, 더 깊은 슬픔, 더 아린 상처를 바라볼 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가장 극단에 서 계신 분, 이 세상 슬픔 중에 가장 깊은 슬픔을 체험하신 분, 가장 큰 상처를 입으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오늘 혹독한 수난을 온 몸으로 당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한계를 지닌 나약한 인간들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고통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인생의 동반자가 십자가입니다.


   고통과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한 노력은 우리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입니다. 고통과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성 금요일,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당신 몸에 다 지시고 높이, 높이 매달리시는 날입니다.


   결국 인류 구원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기적으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신 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였습니다.


   “천국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곳은 겟세마니 동산입니다.”(반 고호)


   천국은 내일, 모레, 10년 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들어가게 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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