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의 비유 (마태25,14-30)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13.18-19.20-21(◎ 12ㄴ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탈렌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제1독서(1코린1,26~31)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8~29)
코린토1서 1장 27절과 28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대조적 표현이 선명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우선 27절에는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것', 그리고 '강한 것'과 '약한 것'이 각각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비천한 것'과'천대받는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반복 대구법을 사용한 문장 기교는 코린토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사도 바오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27절의 내용을 이어받아 28절에서도, 코린토 교회가 세상에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지적하면서,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타 온타'; 'ta onta'; the things that are)을 무력하게 만드신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드시려고'로 번역된 '카타르게세'(katargese)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치게 하다', '끝내다'라는 뜻을 지닌 '카타르게오'(katargeo)의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을 이끄는 접속사 '히나'(hina)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그것은 있는 자들, 유력한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 따위는 구원을 얻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역사 가운데서도 실증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신명7,7) 그분이 보내신 독생성자 예수님께서도 당시 종교 율법적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단죄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선택하셨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무능력한 존재들, 곧 인간의 시각으로는 마치 없는 것 같이 무가치해 보이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스스로 능력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을 무력화 시켰던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과 유능한 자들과 가문 좋은 자들은 앞의 27절에서 '부끄럽게 하시려고'란 표현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하느님께서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못한 자들을 부르신 사건들을 통하여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28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들다'는 말은 종국적인 멸망의 심판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는 말로서, 결국에는 그들이 영원히 멸망을 받아 구세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9)
'이것은 ~ 하게 하셨습니다' 로 번역된 '호포스'(hopos)는 '~하기 위하여', '~할 목적으로'(so that ~may)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로서, 29절이 앞의 26~28절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자랑하지'로 번역된 '카우케세타이'(kauchesetai)는 '자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카우카오마이'(kauchaomai)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메'(me; no)와 더불어 사용되어 어떠한 자랑도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간도'에 해당하는 '파사 사륵스'(pasa sarx)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없이' 란 의미이다.
26절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코린토 교인들은 인간적으로 보잘것 없는 처지 가운데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랑을 일삼으며,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1코린1,12; 3,21).
자신들이 받은 은사들을 잘못 평가하여 이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영적 교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들 자신의 겉모습이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주도적 부르심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 그리고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거리끼거나 미천하게 여기는 십자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철저하게 사람들과 사람들의 세상적 지혜를 자랑했다 (1코린3,21; 4,7; 2코린10,17). 이러한 형태가 바로 '코린토 교회 내부에서' 횡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동일하게 세상의 인본주의적 지혜를 자랑하고, 그런 지혜를 기준으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던 복음 증거자들을 평가함으로써 교회내의 분열과 분쟁을 유발시켰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당면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지혜와 질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탁월한 지혜를 제시하고, 그 지혜가 사실상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교정하고자 한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하느님 앞에서(before)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in) 자랑해야만 한다(1코린1,31).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5,14-30)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5~29)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주인을 두려워했다. 그는 받은 탈렌트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과 투자로 인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채, 주인에게서 받은 자본금을 투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금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기라도 했더라면, 거기에서 이자라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이자 한 푼 얻을 수 없는 땅에 그 돈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원금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나중에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는 25절에서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로 받으십시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here you have)는 '가지다', '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2인칭 단수 동사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는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이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과 잘못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뱉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면책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로 번역된 '포네레'(ponere; wicked)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도덕적으로 사악한'이라는 의미외에도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는'이라는 의미(묵시16,2)를 지닌 형용사인데, 종이 나쁜 관리인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로 인해 주인에게 괴로움을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더군다나 그는 '게으른' 종이었다.
여기서 '게으른'으로 번역된 '오크네레'(oknere; slothful; lazy)의 원형 '오크네로스'(okneros)는 진보가 늦고 지체되며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이 게으른 종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주인이 기대한 진보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아르귀리아'(argyria; money)의 원형 '아르귀리온' (argyrion)은 '은'(silver)을 의미하는 명사 '아르귀로스'(argyr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은전', '은조각'을 의미한다(사도3,6; 루카19,23).
그 당시 화폐는 주로 은전이었는데, 주인은 그 은전으로 된 탈렌트를 '대금업자들에게' 맡겨두었다가 이자를 받게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트라페지타이스'(trapezitais)의 원형 '트라페지테스'(trapezites)는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거나 고객의 예탁금을 보관한 후 이자를 지불하는 사람, 즉 '환전상'이나 '은행가'를 뜻한다.
또한,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단어와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단어 둘 다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주인인 한 탈렌트나 되는 많은 돈을 여러 대금업자들에게 분산 투자했기를 내심 바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탈렌트'에 해당하는 '탈란타'(talanta; talents)의 원형 '탈란톤'(talanton)은 원래 중량을 다는 '천칭', '저울'이라는 뜻의 단어였지만, 중량의 측정 단위와 화폐 단위로 발전했다.
탈렌트는 무게로는 약 34kg에 해당하며(탈출38,25), 돈으로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된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탈렌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라는 단어가 희랍어 '탈란타'에서 유래한 것이며, 여기서의 '탈란타'는 '재능'보다는 '사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자'로 번역된 '토코'(toko; interest; usury)의 원형 '토코스'(tokos)는 '산출하다', '낳다'를 의미하는 동사 '티토'(tit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원래 '출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돈의 이자를 '토코스'(tokos)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원금에서 증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자율은 연리 8%에서 48%의 고리(高利)까지 다양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하게 규정했지만(신명23,19), 타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다(신명23,20).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동족간의 거래에서도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어 '이자' 이야기를 한 것이며, 동족간 돈 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돌려받았을 것이다'로 번역된 '에코미사멘 안'(ekomisamen an)은 현재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미로 '받았어야 했다'(should have received)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서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겠다'
이 구절의 선언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이 악하고 게을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당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종은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주인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 목적을 다른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완수한 자에게는 당연한 보상 외에 또 다른 기대치 않았던 보상을 더해 준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28절의 징계적 선언이 주인의 자의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마르4,25).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각 종들에게 맡겨진 탈렌트는 그들에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알맞은 탈렌트를 맡기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사명과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든 많든, 자기비하나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1코린15,41).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어떤 열매를 원하신다고 잘못 판단해
버리고,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한번 해보지 못하고 묵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부여된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그의 은혜가 넘쳐나며 그의 심령도 성령충만으로 부요해질 것이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며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은사를 상실해 가며, 더 이상 영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반영억라파엘신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각자의 그릇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바탕으로 나의 노력을 더해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선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더 많은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합니다. 때때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면 될 것을 스스로 비교하여 놓고는 비참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과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 그리고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둘은 자기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각자의 능력대로 주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활용하면 되는데 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탈렌트를 주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기대가 있었을 터인데 그 바람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처음부터 주인의 동기를 오해하고 하고 있었습니다. 더 벌지 못한 것에 대해 잘못하였다고 고백하면 될 것을 오히려 뻔뻔스럽게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마태25,24). 하고 주인을 비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입니다. 주인님에 대해서 재대로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내 안에 가둬놓은 안다는 것이 병이었습니다. 자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뭔가를 기대만 하는 사람은 불평불만, 합리화를 꾀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투덜댈 여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탈렌트를 최대한 활용하기를 바라십니다. 각자는 자기가 받은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말씀은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잃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뻔히 잃을 것을 알면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작은 일에 성실하며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으면 그야말로 큰일을 내고 맙니다. 매사에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역량에 따라 귀한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것을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실 것이며 적게 받은 사람에게서는 적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꼭 정해진 일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무엇인가 더 풍요롭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충실하게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증가시킬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기 몫에 충실함으로써 주님과의 기쁨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탈렌트가 어떤 것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많고 적고는 물론 크고 작음에도 상관치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해 유용하게 쓸 뿐입니다. 당신께서 주신 것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쓸 뿐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