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파견 (마태10,7-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하신다. (마태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독서 (호세아11,1-4.8ㅁ-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9)
앞서 8절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에서는 결코 선민을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제시되었다. 이제 9절에서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진노를 거두실 것을 약속하시는 내용이 제시된다. 이것은 8절에 제시된 이스라엘을 아드마와 츠보임으로 대표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과 관련시킬 때, 그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타오르는 내 분노' 에 해당하는 '하론 압피'(haron aphi)는 분명 파멸을 초래하는 진노, 예컨대 앞서 제시된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진 심판을 초래한 진노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이를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는 주님께서 앗시리아를 통해 행하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단행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은 그 심판을 단행하시되, 이스라엘을 전멸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그 후에 다시 그들을 회복케 하실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나타내지 '에 해당하는 단어 '에에세'(eeseh)는 문자적으로 '내가 수행할 것이다' 라는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와 함께 사용되어, 이러한 일이 절대로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두말할 나위없이 앞선 8절에 선명하게, 강렬하게 제시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실로 하느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 악을 행한 자에게 심판을 내리시지만, 그분은 크신 자비와 연민으로 인하여 심판을 넘어서 용서와 회복의 은총을 그 백성들로 하여금 받아 누리도록 한다.
한편, '나는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에 해당하는 '로 아슈브 레샤헤트 에프라임'(lo ashub leshaheth ephraim)은 문자적으로 '에프라임을 멸하기 위해 내가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멸하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레샤헤트'(leshaheth)의 원형 '샤하트'(shahath)는 주님께서 죄인들과 죄악된 세상을 완전히 진멸해 버리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창세6,13 ; 19,13).
하느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아담 이후 범죄로 치닫는 인류를 물로 쓸어 심판하시고, 죄악이 난무하여 무법이 횡행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완전히 멸망시키셨지만,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은 그러한 진멸의 심판을 내리지는 않으실 것이다. 물론 그들을 앗시리아를 통해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그들이 그 고통을 통해 깨닫고 돌이킬 수 있을 만큼만 심판하시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되는 본문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전멸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주님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칭 대명사 '아노키'(anoki)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화자(話者)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본문은 주님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지칭하는 '엘'(El)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전능성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그는 사람처럼 감정에 압도되어 분별없이 본노를 발하지 않으시며, 그의 신적 의지와 지혜는 타오르는 분노의 감정 또한 억제하실 수 있다.
아울러 그분은 오직 공의로 심판을 내리시되, 진노 중에도 당신의 백성들에 대하여 자비와 연민의 정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전능하심, 그분의 초월자 되심은 바로 이같은 측면을 견지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해된다.
이어 본절 말미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밝힌다. '거룩한 이'에 해당하는 '카도쉬'(qadosh)는 어원상 다른 속된 것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거룩함을 유지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들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주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들린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느님의 거룩함은 죄인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나지만, 그것은 죄인을 완전히 진멸해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하여 공의에 입각한 심판을 행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케 하도록 징계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이다.
즉 하느님의 거룩함은 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선민에 대해서는 멸절하는 것이 아닌, 의로운 징계를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빚으시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거룩함이란, 곧 다른 존재와 구별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결코 용서하거나 용납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차원이 다르셔서 무한히 사랑으로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의미한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마태10,7~15)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7)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지니지 마라. (8)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0) 어떤 고을이나 마을이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2)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4)
마태오 복음 10장 7절의 '거저'에 해당하는 '도레안'(dorean; freely)는 받는 이의 관점에서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선물로서 받은'이라는 뜻이고, 주는 이의 관점에서는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주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께로부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선물로서의 구원을 받았다.
이제는 받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아무런 이익도 기대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10장 9절에서 전직 세리 출신으로서 금전 계산에 빨라서 돈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한다.
금('크뤼소스'; chrysos; gold), 은('아르귀로스'; argyros; silver), 구리('칼코스'; chalkos; brass)로 세분하면서, 동시에 짧은 문장 안에 '마라'라고 한 번밖에 번역되지 않은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 neither)와 '메데'(mede; nor)가 세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한다.
그 뜻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불의하게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마태복음사가는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더욱 강조한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10장 10절에서 9절과 유사하게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와 '메데'(mede)가 네 번이나 사용되어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다.
10절에 기록된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 신발이나 지팡이는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인데, 이것을 지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bag for the journey)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였고,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었고,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 stick)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복음 전파의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어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필수품의 소지를 금했을까?
이것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이 마태오 복음 6장 25절이하 34절까지의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산상 설교의 말씀을 먼저 솔선하여 실천해야만 복음을 전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마태6,25)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이 모든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10절 후반에 '받는 것은 당연하다'에 해당하는 '악시오스'(aksios; is worth of)를 통해 복음 전파자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전파자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꾼'에 해당하는 '에르가테스'(ergates; worker)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은, 복음 전파자들에게는 생계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복음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1코린9,14.17,18; 1티모5,18).
또한, 복음 전파자가 육신의 편안을 위해 더 나은 숙식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겨 복음 전파자의 관심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 있다는 사실이 희석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와 더불어, 복음 전파의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복음 전파자들을 충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아 한 곳에 머물기를 명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 취급을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이교도 지역의 흙을 묻혀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신발을 터는 관습이 있었다.
마태오 복음 10장 14절의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버려라'에서 '털어 버려라'에 해당하는 '에크티낙사테'(ektinaksate; shake off)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흔들다'는 의미의 '티낫소'(tinasso)가 결합되어 '흔들어 분리시키다'는 뜻을 지니는 '에크티낫소'(ektinass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명령형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끝내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이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단호하게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거절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의 숙박을 거부한 것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행위로서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는 결국 15절의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은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저 받은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쁘게 전했는지, 오로지 전할 복음의 내용에 충실하며 자신의 전존재와 미래를 온전히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현세적 생계 수단과 돈벌이를 포기한 복음의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 위해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의 열의 하나를 봉헌하는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10,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삶의 기본자세를 철저한 무소유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근본에 충실할 것이지 말단을 걱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성직자, 수도자, 선교사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합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사도직 행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철저한 무소유를 통해 가진 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돈에 사로잡히고 출세를 노리는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대신에 출세하려고 안달하고, 돈에 얽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이 그러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슬픕니다. 아닙니까? 복음의 근본, 예수님의 부르심의 근본은 이것입니다. 봉사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잊고 봉사에 몸 바치는 것, 멈추지 않고 언제나 저 너머로 가는 것입니다. 지위의 편의성. 저는 하나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광장을 지나다니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바리사이들처럼, 정직하지 않게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봉사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를 장사꾼이 되게 합니다."
사실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용해야 할 곳에 제대로 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하느님을 소홀히 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다 뭐냐’ 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셨으며 물질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쌓아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줄 것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야말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잠시 맡겨 주신 것이니 만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보통 돈과 물품만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금전적인 도움은 즉각적으로 수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받은 돈이 떨어지면 또 다른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보다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요즘은 재능기부도 많이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자기의 경험과 지식, 삶의 경륜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십시오. 그렇지만 기왕이면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결코 물질 때문에 하느님께 소홀히 하는 일은 없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파견됩니다. 그들의 임무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그 표징으로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이 자신들의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표지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여정에 자기를 보호해 줄 돈, 여벌 옷,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방문하는 집마다 평화를 빌어 주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신들이 머물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선교 활동에는 두 가지 큰 수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머무를 수 있을 곳에 머무르는 것이고, 둘째는 떠날 곳에서는 미련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집에서는 이미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머물기에 그들과 함께 가능하면 오래 머물수록 복음의 기쁨은 커집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집에서는, 어떤 서운함이나 앙심을 품지 말고, 발의 먼지를 터는 행위를 통해 떠남의 겸손함을 배우도록 요청하십니다.
살면서 머물고 떠날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내 영혼이 평안한 곳을 찾아 머물고, 쉴 새 없이 분주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삶의 자리를 툴툴 털고 떠나 잠시 멈추어 갈 수 있는 용기, 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내 삶을 혼란하게 만들고, 위선과 거짓으로 이끄는 우상들로 가득 찬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팔로 안아 주시며, 병을 고쳐 주시는 분, 분노하지 않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것임을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