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반석 (마태16,13~19)

2018. 6. 29. 오전 5:48:41

글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반석 (마태16,13~19)



베드로는 헤로데 임금에 의해 감옥에 갇히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를 빼내 준다(사도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바오로 사도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티모테오에게 고백한다. (2티모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묻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베드로가 고백한다. ( 마태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제1독서 (사도12,1-11)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5)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11)

 

 

사도행전 12장 1절에 나오는 '헤로데 임금'은 '아그리빠 1세'이다.

그는 헤로데 대왕의 손자로, 헤로데 대왕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와 베리니케 사이의

아들기원전 10년에 태어났다.

 

그는 처음 몇 년을 로마에서 지냈고, 칼리굴라 황제(a.d.37~41년; 재위기간)의 총애를 받아

a.d.37년에는 후작령으로 일정한 땅을 차지한다.

 

형제가 살해당한 뒤 아그리빠클라우디우스가 황제로 등극되도록 협조한다.

 

황제직에 오른 클라우디우스(a.d.41~54년; 재위기간)는 고마움의 뜻으로

아그리빠를 a.d.41년에 유다 지방의 왕으로 임명한다.

 

유다 왕이 된 아그리빠는 자신이 죽던 해 (a.d.44년)까지 유일한 헤로데가(家)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조부 헤로데 대왕이 다스리던 거의 전 지역을 다스린다.

 

그 당시 유다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통한 건축업이나 대규모 공사를 통해 돈을 벌면서

살기 보다는 유다인들의 고유한 생활 양식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아그리빠는 소수 사람들을 박해하며, 여기서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지도적 인물들에

대한 박해를 통해 다수의 백성들을 자신 편으로 끌어들인다.

 

한편으로는 로마 제국의 집권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인들의 민족 의식을 조성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다.

 

사도 야고보가 참수된 사실로 보아(사도12,2) 유다의 국가 권력이 여러해 동안 로마와

친분을 나눈 뒤에 다시금 사형 집행 권한을 정식으로 가졌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당시 유다 왕국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유다 백성들에게

죄를 범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그 다음 베드로가 투옥되었다가 신비로운 손길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오게 되는

사건이 펼쳐진다(사도12,3~6). 

 

그 때가 '무교절'이라는 시기의 표현(사도12,1)은 이 사건이  '예수 수난'과 결부 되었음을

암시한다(루카22,1~7).

 

예수님의 운명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다.

 

여기에 서술된 베드로의 처지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

 

초대 교회 당시의 베드로의 수위권과 으뜸 사도로서의 위치와 신분과 성소의 무게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드로 반석위에 선 교회(마태16,18~19)안에서 으뜸 사도의 운명은 교회의 존폐를

가늠한다고 여기고, 공동(합심) 기도를 뜨겁게 한 것 같다(마태18,19~20).

 

하느님께서는 초대 교회 공동체 편에 서 계신다.

 

따라서 밤, 쇠사슬, 감옥 등은 결코 속박이나 잃어버린 상태가 될 수 없다.

 

빛, 천사들의 출현, 살아 움직임, 사슬 같은 장애물의 제거, 문이 열림 등은

바로 구원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표징이다.

 

공동체의 뜨거운 공동(합심)기도로 '감옥문이 열려 갇힌 이들이 신기하게

풀려나오는 기적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하느님의 권능이

국가 권력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천사를 통해 구출되어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도달했을 때 아직도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본다(사도12,12).

 

그녀의 집은 당시 그리스계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던 집으로 여겨지며,

현관 문과 여종이 거론되는 것을 볼 때 귀족적인 집으로 묘사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복음(마태16,13~19)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5~16)


마태오 복음 16장 15절에서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이 생략되었지만, 원문에는

'그들에게'에 해당하는 '아우토이스'(autois; to them)이 나온다.


그리고 '물으시자'에 해당하는 '레게이'(legei; he asked)'말하다'

뜻을 가진 '레고'(lego)현재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이다.


희랍어의 현재형은 단순히 현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계속적 동작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의 질문이 모든 세대의 믿는 이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물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서 '그러면'에 해당하는 접속사

'데'(de; but)는 이 질문이 앞의 대답과 대조됨을 나타낸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기대와 욕구에 따라 그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를 가져다 주고, 그들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야로만 보지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나은 대답을

기대하고 계시는 것으로서, 사랑하는 당신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소망이 엿보이는 질문이다.


그리고 '하느냐?'에 해당하는 '레게테'(legete; say)'말하다'는 뜻을 가진

'레고'(lego)복수2인칭으로 '너희는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에 '너희는'에 해당하는 인칭 대명사 주격 2인칭 복수형인 

'휘메이스'(hymeis; you)를 첨가하여 '너희'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셔서 하신 질문이 아니라

당신의 메시야적 정체성(identity)의 명백한 고백을 제자들로부터 도출시키기

위한 질문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앞의 마태오 복음 16장 13절의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는 질문은 마태오 복음 16장 15절의 질문을 이끌어 오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군중들의 생각과 관심보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직접 받던

제자들의 생각과 고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질문은 동시에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스승님'으로 번역된 '쉬'(sy; you)는 인칭 대명사 주격 2인칭 단수형으로

'당신'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십니다'에 해당하는 '에이'(ei; are)은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 동사의 2인칭 단수형으로, '당신은 ~ 이십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스승님'으로 번역된 '쉬'(sy)강조형으로 고백의 대상이 되는

'당신',예수님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원문에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christos; christ) 앞에

정관사 주격 남성 단수인 '호'(ho; the)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신은, 그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오실 메시야로 예언된 바로 그분이심을 뜻한다.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비로서 여기서 처음으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살아계신'에 해당하는 '존토스'(zontos; living)'살다'는 뜻을 가진

'자오'(zao)의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이것은 이방의 죽은 신들과 대조되는 표현으로서, 하느님께서 스스로 영원토록

자존(自存)하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며, 또한 생명을 부여하시는

생명의 근원되신 분이시고, 그리고 과거와 더불어 지금과 미래에도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원문에는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오스'(hyos; son)앞에 정관사 '호'

(ho; the)가 기록되어 있어, 직역하면 '살아계신 하느님의 그 아들'

(the son of the living god)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예수님께서 영원자존자이신

하느님의 독생성자 되심을 나타낸다(요한1,14.15; 3,18; 1요한4,9).




<베드로, 바오로>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가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사도 12,6-7).”


여기서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은, “헤로데가 베드로 사도를 처형하려고 정해 놓은 날의 전날 밤”입니다. 천사가 베드로 사도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웠다는 것은, 베드로 사도가 태평스럽게 아주 깊이 잠들어 있었음을 뜻하고, 또 그가 살고 죽는 문제에 초연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완전히 ‘믿음’으로 충만한 사도로 변화되었음도 나타냅니다.

자고 있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에서, 거센 돌풍 속에서도 주무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4,37-40).”

신앙인들이 겪는 박해와 고난과 시련 등은 거센 풍랑과 같습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예수님은 그 풍랑에 시달리는 작은 배를, 즉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거센 풍랑 속에서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사람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 사도를 구출해 준 일은, 예수님의 다음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천사가 베드로 사도를 구출한 일은 사실상 교회를 구출한 일이고, ‘저승의 세력’, 즉 헤로데라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준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바로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태평스럽게 잘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2티모 4,17-18)” 이 말은, 주님의 보호와 도움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 선포 활동을 하는 신앙인들을 항상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사실 복음 선포는 주님께서 하시는 ‘주님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선포 활동을 하는 이들을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혹시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형으로 죽었고, 바오로 사도는 참수형으로 죽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지켜주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왜 지켜주시지 않았는가?” (그런 질문에 대해서, “그러면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가 늙어 죽는 것만을 주님의 보호로 생각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을,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티모 4,6-8).”


바오로 사도는 천수를 누리다가 늙어 죽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란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의로움의 화관’을 얻는 것뿐이었습니다. 지상에서 만수무강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순교’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지름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하고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5-9).”

우리의 발은 땅을 디디고 서 있지만, 우리의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베드로 사도가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잠을 자고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쇠사슬과 감옥에서 구출합니다. 잠이 덜 깬 사도는 환시를 보는 것으로 착각했으나, 천사가 사라지자 주님께서 자신을 헤로데의 손에서 구해 내셨음을 알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고백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사도는 의로움의 화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신앙 고백의 모범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도직의 근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민족들에게 주어짐’을 설파합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한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영원한 생명을 전파하는 전형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 회심한 바오로 사도는 열정적으로 선교하다 참수로 순교하는 전형이 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커다란 두 기둥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제자들의 으뜸으로서 교회 일치의 근원이 되었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 세상에 전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을 본받아 참된 신앙을 고백하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다짐합시다. 우리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은총으로 극복하고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