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박해 (마태 10,17-22)

2017. 12. 26. 오전 7: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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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6일 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박해 (마태 10,17-22)


성령이 충만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은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데, 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둔다. (사도 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시편 31(30),3ㄷㄹ-4.6과 8ㄱㄴ.16ㄴ-17(◎ 6ㄱ 참조)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은 가련한 저를 굽어보셨나이다. ◎
○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1독서(사도6,8~10; 7,54~59)

  

예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을 기점으로 예수님으로 인해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스테파노 부제 축일(26일),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았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 가슴에 기대었던사도 요한 축일(27일), 예수님 탄생으로 말미암아 헤로데 대왕의 명령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28일)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이다.

그는 사도들이 뽑은 부제였고 부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으며,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인들을 위해 활동하였다.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인은 지혜로운 언변으로 그들을 물리쳤는데, 결국 성인은 유다인들의 거짓 진술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그 당시 율법을 거스른 자들 중에 돌로 쳐 죽임을 당할 때에는 두 세사람이 먼저 큰 돌로 사람의 머리뒤를 쳐서 쓰러뜨리면, 그 다음 여러 사람들이 작은 돌들을 던져 죽이는 아주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형 방법이다.

'스테파노'는 그리스 말로 '왕관', '면류관' 이란 뜻인데, 주님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최초의 순교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도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6,8), '그의 말에서 드러난 지혜와 성령'(6,10) 이란 표현이 나오지만, 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며 기도를 많이 봉헌하고 믿음이 강했으면, 이런 성령의 은사들이 내려 왔을까? 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8) 고 나와있고 성령이 충만하여 환시를 본다 (7,55-56).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며,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것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옥좌(보좌)옆에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신" 다는 말씀을 접한다.

'앉아 있는 것'과 '서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앉아 있는 것' 바라보고 관망 한다는 뜻이지만, '서 있다는 것'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의미한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스테파노의 순교에 동참하시고, 그의 기도와 희생과 증언을 들어 주시며, 그안에서 함께 순교하고 계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은 당신과 당신의 말씀을 온 몸과 맘으로 증거하는 스테파노를 사랑하시며, 애가 타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요한 묵시록 14장 1절에도 나온다.

"내가 또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런데 마찬가지로, 질세라 사탄도 만만치 않게 대항한다.

요한 묵시록 13장 4절에는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현장에는 그의 살인에 동조하고 뜻을 함께 하는 율법의 전사 사울이 등장한다.

스테파노를 죽이는 자들이 거짓 증언을 하며 돌을 던져 죽이는 과정에서 땀이 나니까 겉옷을 벗어 사울 앞에 던져 주고 있다. 스테파노의 살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겉옷을 사울이 맡고 있음으로써 사울도 스테파노의 죽음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훗날 이 순교의 현장은 사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 그가 복음을 열성으로 전하고 참수 치명하는데 영적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는 불씨가 되어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모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팔레스티나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적으로 불행이나 실패가 나쁜 것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잘 모르나 하느님의 깊은 뜻과 섭리와 안배가 모든 일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는 주님, 특히 주님 복음과 영생의 가치관 때문에, 주님의 뜻 때문에 고난을 겪는 현장을 '서서' 지켜 보시며 동참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지 모르겠다. 

특히 주님의 말씀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위로와 평화가 충만하길 비는 마음이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을 견딜 수 있잖아요."

698번 '주님 손 잡고 일어 서세요' 라는 시련 극복의 주제를 가진 기초 공동체의 성가가 들려온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복음 (마태 10,17-22)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0)


마태오 복음 10장 20절은 영어에 있어서 '~아니고 ~이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not~but' 용법과 동일한 '우~알라'(u~alla) 용법이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권세자들에게 잡혀가 심문을 당하게 될 때 그들에게 적합한 대답을 하게 할 자는 너희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을 부정과 긍정의 비교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선택한 자에게 할 말을 가르치신다는 이와 같은 개념은 이미 구약에도 등장한다.

탈출기 4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언변의 어눌함을 이유로 소명을 거절하는 모세에게 당신이 함께하셔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신약에서도 성령께서는 보호자, 즉 위로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특히 요한 복음 14장 26절에서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분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지혜의 영이신 적절한 대답을 주시기로 기도하며, 또한 평소에 내가 성령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항상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박해>


도대체 왜, 박해자들은 박해를 할까?

1)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충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박해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요한 10,32)”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요한 10,33).”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를 제거하는 것은 하느님께 충성을 바치는 일이라는 것이

박해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스테파노에 대한 박해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사도 6,11).”

(바오로 사도도 박해자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경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이런 박해는 이스라엘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박해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이 말씀의 ‘일’을 우리 입장에서는 ‘삶’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교가 기존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해로운 종교라고 오해하고서

박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발당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흑사병 같은 자로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 사이에 소요를 부추기는 자며

나자렛 분파의 괴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도 24,5).”

“이 사람들은 유다인인데 우리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습니다(사도 16,20-21).”

박해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어떤 위험한 전염병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전염병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천주교가 조선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오해했기 때문에 박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위험한 전염병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치료제라는 것을

‘삶’으로써 증명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일을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는 다른 많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실한 사람으로,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하느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2코린 2,14-17).”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3) 자기가 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또 회개하라는 말이 듣기가 싫어서 박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9-21).”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헤로데와 헤로디아입니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4,3-5).”

헤로데가 자신의 ‘삶’을 ‘어둠’으로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그는 ‘빛’을 거부했고, 하느님의 예언자를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4) 자기들과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인생의 목표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9).”

우리는 박해와 고난을 겪더라도 예수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이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과 다르다면, 그냥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박해가 고통스럽더라도 세상 사람들과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1요한 2,28).”


송영진 모세 신부


스테파노 첫 순교자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곁에서 ‘식탁 봉사자’로 헌신한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핵심 봉사자인 성인은 유다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다 지도자들의 증오가 극심한 상황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큰 이적과 표징을 보여 주던 스테파노 성인은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진리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진리를 고백함으로써 첫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모든 것 위에 두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주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은 죽는 순간까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는 유다인들의 폭력과 미움을 용서하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성인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사울은 나중에 회개하여 이방인을 위한 사도, 초대 교회의 커다란 기둥이 되었습니다. 성인의 죽음은 바오로 사도의 활동 안에서 커다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며 애덕을 실천하는 증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증언은, 우리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의 삶과 목숨을 하느님께 맡기도록 이끕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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