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자식들을 잃고 운다(마태 2,13-18)

2017. 12. 28. 오전 5: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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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자식들을 잃고 운다(마태 2,13-18)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시라고 한다.(1요한  1,5―2,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요셉은 천사가 말한 대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는데,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마태 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제1독서(1요한1,5-2,2)


요한 1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1,5-3,10)의 대주제는 이고 둘째 부분(3,11-5,12)은 사랑인데, 두 부분의 첫 구절에 그리스어로 '메시지' 또는 '소식'을 뜻하는 '앙겔리아'(angelia)라는 말이 나온다.


 요한 1서에서 앙겔리아 예수님의 지상 생애 안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난 '생명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요한 복음을 비롯하여 4복음서는 이 말의 동의어로 '기쁜 소식'을 뜻하는 '에우앙겔리온'(euangelion)을 사용한다.

 첫째 부분(1,5~3,10)의 첫 머리에서 저자는 하느님을 빛으로 계시한다.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없다."(1,5)

 여기서 저자는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눈 요한의 세계관 반영한다(요한3,19~21).

빛 속에서 거닐고 진리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게 되고 동료 인간들과도 친교를 나누게 된다. 빛 속에서 거닐기 위해서는 당신의 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을 받아 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우리안의 주어진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다(1,8~10).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모두 죄인으로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 축일'이다.

헤로데 대왕은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기 정적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인물이었다. 그는 부인이 10명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자녀들이 권력 승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 탄생 무렵, 권력에 위협을 느껴 수많은 죄없는 아기들,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2,13~17참조).


 초세기 교부들은 이때 억울하게 죽은 아기들의 희생들을 순교로 이해하였다.

곧 희생된 아기들은 말 없이 피를 흘림으로써 주님의 강생의 신비를 증언했으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어 인류 구원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실지를 미리 보여준 것이다.

그는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진리가 아닌 거짓 속에,사랑이 아닌 탐욕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오늘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기들의 비참한 살해'끽' 소리도 못하고 죽은 아기들 뿐 아니라 그 아기들의 부모와 가족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절규와 원망이  헤로데 대왕과 그 군대들 뿐 아니라 이집트로 피난가는 나자렛 성가정의 성모님과 요셉 양부를 향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 강생안에는 여러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희생과 수난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구원자 예수님 때문에 죽고 고통 받고 눈물 흘렸기에 오늘 교회의 축일처럼 내세에서의 보상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원죄의 사함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해되는 낙태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빛이 아닌 어둠, 죄악과 탐욕으로 가득차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가 구속하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닌 태아들을 죽이는 우리들은 또 하나의 헤로데가 아닌가?


우리 안에 헤로데의 어둠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죄 없이 순교하여 원죄의 사함을 받은 아기 순교자들이여!

이 시대 낙태되는 아기들을 위해 빌어 주소서~~~



순교자의 피

 

성 예로니모는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 이라고 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희생과 증거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그들의 모범을 따라 주 하느님께로 나갑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하며 주님의 품을 찾은 스테파노, 오늘 기억하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는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열정을 일깨워 주며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 가르쳐 줍니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뒷일이 걱정되어 늘 불안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헤로데는 두 살 이내의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살해했습니다(마태2,16). 그는 권력에 집착하여 간교하고 잔인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자기의 권력을 넘보는 싹이라고 단정하고 잘라 버리고자 했습니다. 이런 일은 이미 이스라엘이 한창 피어날 때 이집트에서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과 생명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을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1,22). 자신의 불안과 기득권을 유지 하려고 잔인한 죄를 저지르고 무거운 짐에 눌려 지내야 하는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습니다. 

 

이런 어둠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낙태건수는 정부추정치만 일 년 40여만 건에 이릅니다. 출생아는 년 41만 건이라고 하니 소리 소문 없이 낙태로 희생되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보호받아야 할 태아들이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부모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무죄한 생명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유린하고 있으니 그들의 통곡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죄와 탐욕에 눌려 사는 것보다 손해보고 버리며 사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요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맞바꾸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아도 인간입니다. 그들의 생명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합니다.

 

요셉은 한밤중에 천사가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요셉은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습니다’(마태2,14). 온갖 어려움을 마다 않고 지체 없이 발길을 옮기는 요셉의 태도는 곧 순교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일상 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몸에 배어있는 행동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때 부름을 받던지 기꺼이 따라 나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교는 일상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말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자기 의지를 희생으로 바쳤다면 그 사람을 감히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과 안배는 언제나 함께 합니다.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련과 고통,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분의 손길과 요청에 단호히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순교자들이 이 지상에서 소멸 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천국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세상의 불의는 의인의 탄생을 싫어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면 우리사회 안에 거짓과 불의에 어떻게 다가서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입니다.

복음에서 헤로데는 박사들에게서 자신 외의 왕이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는데도

자신의 왕좌를 지키고 싶은 두려움에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죽은 아기들은 예수님을 본적도 없고, 행동이나 말로 고백하거나 예수님이 왕이라고 주장을 하지도 않았건만,

그들의 저항 없는 죽음은 예수님이 왕임을 증거 하는 죽음이 되었고 아기들은 예수님을 우리들의 진정한 왕이심을 증거한 최초의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희생과 죽음...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면, 단지 그들이 어리고 약하다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의 소유물이나 부속물 정도로만 여기고 아이들의 존엄한 인성을 무시하는 일들 앞에서입니다.

많은 경우에서 아이들과 약한 이들은 도움과 배려를 받아야함에도 그들이 저항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우리 사회 안에서도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이 곳곳에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전쟁과 가난에서 그리고 어른들의 욕심에서 더 이상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오늘 여전히 나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발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과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배 다미안 수녀


 


생명을 살리는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죽음을 가져오는 인간의 분노

 

오늘 복음은 2,13-152,16-18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 부분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과정, 사람을 살리는 과정을 볼 수 있고, 뒷 부분에서는 인간의 분노가 지닌 파괴적인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헤로데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2,12). 그 이후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이 이미 떠난 것을 알았고,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기에 분노합니다.

 

헤로데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그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는 요셉의 꿈에 천사를 보내시어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에집트로 피신하고, 알려줄 때까지 그 곳에 머무르라고 전해줍니다. 이에 요셉은 그 밤에 바로 일어나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어둠을 헤치고 에집트로 걸어갑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의 생명을 지키셨습니다.

 

반면 헤로데는 임금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의 말을 들은 이후, 권력유지를 위한 불안감과 욕심, 동방박사에게 속았다는 분노로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귀한 어린 아들들이 생명을 잃었고, 어머니들의 통곡소리는 하늘을 울렸을 것입니다. 불과 며칠 전 제천에서 일어났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처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우리 주님의 성탄시기에, 나 자신은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지는 않는지, 알게 모르게 아기 순교자들처럼 우리 주위에서 작은 생명이라고 죽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길 희망해 봅니다.

 

김 요나단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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