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주님의 종 (루카 1,26-38)

2017. 12. 8. 오전 6: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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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주님의 종 (루카 1,26-38)


성모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한국 천주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주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꾄 뱀에게, 네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 창세 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 ( 에페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시자 마리아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창세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9)


여기서 '부르시며'에 해당하는 '와이크라'(waiqra; and called)에서 '부르다'('카라'; qara)는 큰 소리로 '외치다'(1사무26,14; 1열왕13,12)라는 의미와 '소환하다'(욥기13,22)라는 의미도 지닌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부인할 수 없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그를 소환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소환은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지음받은  모든 인간에게도 이루어진다.


또한 '물으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wayomer; and said)에서 '묻다'('이르다';'아마르'; amar; 창세46,33)는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가리키나 더 나아가 '권하다'(에스테르3,4)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앞의 '부르다'가 죄에 대해 엄정하신 하느님의 공의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라면, '묻다'는 연약하여 죄를 지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죄는 미워하되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인간 자체는 불쌍히 여기시고 몸소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다(이사1,18).


한편 '너 어디 있느냐?'에 해당하는 '아옉카'(ayekkah; where are you?)에서 '어디'를 의미하는 의문 부사 '아예'(aye)'너'를 의미하는 접미사 '카'(ka)만을 붙인 극히 간략한 형태의 의문문이다. 그러나 길게 묻지 않고 간략하게 질문하므로 더욱 가슴 속을 깊이 파고 들며 강한 울림을 남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모두 생략하신 채 단도직입적으로 아담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만을 표면으로 끄집어 내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예'(aye)가 장소를 나타내는 의문부사이지만 본절은 하느님께서 현재 아담이 있는 장소를 모르셔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담으로 하여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으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상태인지 반성을 촉구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아담은 이 질문을 받자마자 자신의 죄스런 상태를 돌아보고 겸허하게 하느님 대전에 나아와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방문과 자신을 돌아보도록 촉구하시는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대축일 복음 (루카1,26-38)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37~38)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 루카 복음 1장 37절의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자에게 임신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하느님의 모든 말씀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원문의 '말씀'에 해당하는 '레마'(rema)는 일차적으로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카 복음 1장 37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 탄생에 관해 예언된 모든 말씀의미하며, 이러한 예언들이 마치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 is impossible)'아뒤나토스'(adynato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아뒤나토스'(adynatos)'능력있는', '강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뒤나토스'(dynatos)에 부정 접두사인 '아'(a)가 붙어서 '능력없는', '약한'이란 뜻을 갖는 단어이다.


따라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는 앞의 '우크'(ouk; nothing)와 연결되어 이중 부정의 의미를 갖고서 매우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마리아에게 선포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쇠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던 아브라함에게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며 아들 이사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18,14)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루카 복음 1장 38절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을 잘 보여 주며, 이러한 신앙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고 잔치집 일꾼들에게 지시함으로써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일어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자신을 지칭한 단어 '둘레'(doule; servant)'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doulos)의 여성 명사로서 '결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하녀(계집종)'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주인',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kyrios)의 소유격 '퀴리우'(kyriu)와 연결되어 철저하게 주님께 예속된 능력없는 계집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맡기겠다는, 철저한 순종과 겸손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본문 서두에 기록되어 있는 '보십시오'에 해당하는 '이두'(idu)라는 단어는 마리아의 이러한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이두'(idu)의 용법은 이야기의 생기를 돋우어 주거나, 듣는 이나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시킬 때, 그리고 좀 더 깊은 생각을 촉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는 이 단어가 동사없이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마리아 자신의 '종'으로서의 존재를 천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겸손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대로'에서 '대로'에 해당하는 '카타'(kata)라는 전치사는 목적격과 연결되어 뒤에 오는 명사의 내용이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해당하는 '게노이토'(genoito; may it be)'발생하다'는 뜻의 '기노마이'(ginomai)의 희구법으로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리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라는 위대한 순종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순간이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의 성소를 허락하는 순간이며,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피와 살을 취하고 인간의 역사안으로 들어오는 강생(육화; incarnatio)의 순간이기에, 우리는 사도신경과 삼종경을 바칠때 고개를 숙여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의 예를 드리는 것이다.




<성모님은 원죄 없으신 분>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3).”

“...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 2,17-18).”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히브 4,15-16).”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를 제외하고 모든 점에서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위치로 내려오셨습니다.)

한 여인을 통해서 태어나신 일도 사람들과 같아지신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시는 일은,

인간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동정녀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하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동정녀가 아니었다면,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

인간 남자의 아들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가 동정녀였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죄 속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즉 인류의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시기 위해서

모든 점에서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셨으면서도

죄에 대해서는 떨어져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나 죄의 영향력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병자를 치료하려면 의사 자신이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것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오염 물질을 제거하려면,

제거하는 사람 자신이 먼저 깨끗한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 또는 죄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

다른 죄인을 깨끗하게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일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영향력에 대해서 떨어져 계신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시려면

우선 먼저 그분의 어머니도 원죄 없으신 분이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모님의 부모님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성모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하고만 관련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원죄’ 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죄’ 라는 말은 개인이 범한 죄가 아니라,

개인이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죄를 범하기에 앞서

누구나 타고나는 인류의 비구원적 상태를 의미합니다(가톨릭 청년 교리서 68).”

만일에 성모님이 원죄 없으신 분이 아니었다면,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비구원적 상태’인 당신의 태중에 모신 것이 되고,

이것은 모순된 일이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원죄 없으신 분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이 원죄 없으신 분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일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신 일은, 성모님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지만,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일과 신앙인의 모범이 되신 일과

일생 동안 죄를 짓지 않으신 것은, 당신의 자유의지로,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고 순종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바로 그 응답과 순종과 노력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8-19).”

여기서 ‘의로운 행위’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가리키고,

‘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을 가리키는데, 성모님께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응답, 순종, 희생, 헌신은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 수난에 동참한 일입니다.


‘성 안셀모’는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하느님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어내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되시고

이렇게 하여 당신이 지어내신 모든 것을 재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만물을 지어내실 수 있었던 분은

실추한 피조물을 마리아의 도움 없이 재창조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성무일도’에서 인용)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무에서 만물을 지어내실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협력이 없어도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협력하고 돕기를 바라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협력자이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성모님의 말씀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밝히신 말씀이고,

그래서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위대한 응답과 순종과 헌신의 말씀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매일묵상(대림 제2주간 월요일)오늘의 말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아담과 하와는 죄 없는 상태로 창조되어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은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는 순진무구의 상태에서 죄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죄의 상처를 입은 채로 새로운 구원을 간절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느님께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지켜 주시고, 은총으로 가득 차게 하시어, 성자의 맞갖은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뱀의 간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철회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흠 없이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를 선택하십니다. 성령께서 마리아를 감싸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게 하십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종’으로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셨습니다.

 하와가 죄를 지어 은총의 지위를 잃어 버렸지만,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일치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고, ‘은총의 전구자’요 ‘거룩한 삶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모님처럼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례로 하느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티와 흠이 없는 은총의 지위를 지키셨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세례 때 받은 그 은총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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