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금요일] 하느님 나라 (루카 21,29-33)
다니엘 예언자는 밤의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는 것을 본다. (다니엘 7,2ㄴ-14)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잎이 돋자마자 그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되듯,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 (루카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1독서 (다니7,2ㄴ-14)
"다니엘이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2-3)
다니엘서 7장 1절은 벨사차르 제일년에 받은 일련의 환시에 대한 진술을 시작하는 말이다. 다니엘은 앞선 1절에서 밤에 꿈을 꾸고 환시를 보았다는 진술을 했기 때문에, 다니엘서 7장 2절에서 굳이 또다시 자신이 밤에 환시를 보았다는 진술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니엘이 이렇게 중복 진술하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어떤 환시를 본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새 성경은 번역하지 않았으나, 원문은 '그런데 보라!' 라는 의미의 감탄사 '와아루'(waaru)로 시작하여 환시의 내용이 매우 주목할 만 것임을 강조했다. 그 다음에는 다니엘이 본 환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다니엘이 환시 가운데서 맨 처음 본 광경은 하늘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젓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하늘이 네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에 대조되는 바다가 나온다. 하늘을 기원으로 하여 사방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에 대하여 하느님의 심판으로 보는 입장이 있고, 인간 역사에 끊임없이 개입하여 왕권을 세우고 폐하기를 반복하는 하느님의 주권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이 가운데 후자의 입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불어오는'에 해당하는 '메기한'(megihan)이 능동태 분사형 단어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편, '큰 바다를'에 해당하는 '레암마 랍바'(leamma rabba)는 문자적으로는 '큰 바다로' 혹은 '큰 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성경에서 '바다'는 하느님의 주권을 대항하면서 싸우는 악한 영적 세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많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바다를 질타하시며(시편18,16), 바다를 꾸짖어 말려 버리시고(나훔1,4), 바다를 짓밟으시며(하바꾹3,15), 바다 괴물과 싸우신다(이사27,1). 그리고 사악한 자들은 포효하는 바다와 같다고 묘사된다(이사17,12.13).
이러한 성경적 예들을 고려할 때, 여기의 바다는 하느님의 주권적 통치를 싫어하는 불신 세상의 세력, 혹은 세상의 왕국들의 배후에 역사하는 강력한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우기 세상의 거대한 왕국들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들이 이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이 바다가 세상 왕국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임을 암시한다.
다니엘은 환시 가운데 거대한 짐승 네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서 '거대한'에 해당하는 '라브레반'(rabreban ;great)은 다니엘서 7장 2절의 '바다'를 수식하는 '큰'에 해당하는 '랍바'(rabba)와는 다른 단어로서, 크기가 매우 거대하면서 기세와 힘이 엄청난 상태를 묘사한다.
그리고 '올라왔다'에 해당하는 '쌀레칸'(salleqan)은 '올라오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쎌리크'(seliq)의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거대한 짐승들이 바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다니엘은 7장 17절에서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을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 이라고 해석한다. 대부분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들이 다니엘서 2장의 꿈에 나오는 머리, 가슴/팔, 배/넓적다리, 아랫다리/발 등이 상징하는 바빌론, 메디아, 페르시아 연합국, 그리스, 로마 제국과 상등하는 것으로 본다.
하느님께서 세상 나라들을 그렇게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환시로 계시하신 것은 그 나라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약소국들과 약한 자들을 향해 극악무도한 폭정과 착취를 일삼을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로 모양이 다른'에 해당하는 '샤네얀'(shaneyan)은 '바꾸다', '변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셰냐'(shena)의 능동태 분사형이다. 이것은 그 짐승들이 모양, 크기, 성질, 속성 등에 있어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짐승들이 상징하는 상기의 나라들은 그 규모와 힘과 문화과 종교와 성격에 있어서 모두 다 달랐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복음(루카21,29~33)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1~32)
루카 복음 21장 29~38절은 종말의 때를 살면서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화과나무'만을 다루는 데 비해,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모든 나무'를 첨가시켜 기록한다.
어떤 이는 '무화과나무'는 유대교를, '모든 나무'는 '이방 교회들'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제한해서 해석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오류를 막고자 '이방 세계' 또는 '이방 교회'를 상징하는 '모든 나무'를 첨가했다고 본다.
실제로 세상의 종말은 어느 한 민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이고 전세계적 사건이다.
루카 복음 21장 31절의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he basileia tu theu; the kingdom of God)는 종말에 올 심판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상의 종말이 갖는 이중성을 잘 알고 있다. 즉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세상의 종말은 무서운 심판과 형벌의 날이 될 것이며,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날이 영광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人子)의 오심은 확실히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의 날이요,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날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를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특히 고난받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용기와 위로와 힘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종말에 나타나는 징조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을 주는 서곡과 같은 것이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32절의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멸망의 전조로 예언된 모든 일들이, 당시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세대에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예언이 A.D.30년에 주어졌고, 예루살렘의 멸망이 A.D.70년에 있었기에, 그 사이 40년의 기간이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단지 예루살렘 멸망과 관계된 예언의 성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과 더불어 그리스도 재림으로 오게 되는 최후의 종말의 시기에 임박하여 나타날, 전우주적인 징조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질 것이며, 비로소 그 뒤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21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심판의 대상이 되어 완전히 없어질 하늘과 땅(천지;天地)과, 영원히 보존될 당신의 말씀을 대구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심판과 예언의 확실성을 더해 주신다.
게다가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말씀을 동일시하심으로 인해 당신의 말씀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시며, 당신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신다.

<무화과나무의 교훈>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29-33).”
여기서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라는 말씀은,
“종말의
날이 오면 누구나 저절로 그것을 알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여름이 추수철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는 심판을 상징합니다.)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에서 ‘이러한 일들’은,
루카복음 21장 25절-26절에 기록되어 있는 표징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5-28).”
그
날이 되면 ‘전우주적인’ 어떤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종말이 왔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곧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받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까무러칠 정도로 무서워하겠지만,
준비를
제대로 한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될 것입니다.
즉
구원과 생명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맞으러 나갈 것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종말의 날이 무서운 ‘죽음의 날’이 되겠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그 날은 상을 받는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실 때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말씀과 종말에 관한 말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복음을
선포하실 때 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종말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날이 왔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재림하실 때에 그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종말’로 표현을 바꾸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종말이 시작되었고,
재림하실
때에 종말이 완성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말씀에 “종말은 틀림없이 온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도대체
종말의 날이 언제인가?” 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인간의
과학을 총동원해도 그 날과 그 시간은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날이 언제인지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종말이 언제 오든지 간에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지상 생애를 마치면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날이 아직 멀었다고 해도 나의 인생은 그 전에 끝날 수 있고,
최후의
심판을 받기 전에 사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회개를 서둘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알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시편 90,3-6).”
이런
말씀들은 단순히 “인생은 허무하다.”는 뜻의 말씀들이 아닙니다.
허무하지 않은 것을, 즉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코헬렛(전도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코헬 11,9).”
심판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막 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인생을 즐겁게 살았더라도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은
‘그 날’이 왔을 때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후회’와 ‘절망’이 ‘그 날’ 받게 될 벌 가운데에서 가장 무서운 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한 사람은 결코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당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하라는 훈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다니엘 예언자는 사자 같은 짐승, 곰처럼 생긴 짐승, 표범처럼 생긴 짐승,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짐승을 환시로 보며 박해자들의 무시무시한 권력과 폭정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하는 폭력이 영원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백만이 시중들고 억만이 모시는 하느님께서 법정을 열어 악인들을 단죄하시고 영원히 통치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하는 하느님의 온 백성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최고 의회 앞에서 다니엘의 예언을 상기시키며 당신의 신적 기원을 알려 주십니다(마태 26,6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며, 구름을 타고 영광스럽게 심판하러 오실 구세주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하듯이 구원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시작과 마침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과 섭리 안에서 진행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주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펼쳐지고 완성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살아 있으며 삶의 구심점이 됩니다.
그분의 말씀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 안에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하느님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는 선하고 올바른 주님의 말씀이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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